편집매장 분더샵이 기획한 ‘임스 체어 전시’. 엄청난 양의 빈티지 의자들이 선보였다. 사진 분더샵 제공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이 한 말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 지인이 그의 집을 찾아가 왜 매번 누워 있느냐고 묻자 “서 있을 이유가 없어서 누워 있던 건데?”라고 답했다고 한다. 과연 맞는 말이라고 누워서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 대부분을 눕거나 앉아서 보낸다. 달리 말하면 침대와 의자에서 대개의 시간을 보낸다는 뜻이다. 침대와 의자는 ‘휴식과 안락을 위한 가구’라는 공통분모가 있지만, 의자를 조금 더 미적인 관점으로 대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침대는 디자인보다 크기와 매트리스의 편안함을 더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편집매장 ‘10 꼬르소 꼬모’가 기획한 샤를로트 페리앙 전시. 사진 ‘10 꼬르소 꼬모’ 제공
코로나19 사태 이후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의자에 대한 관심도 따라 증가하고 있다. 당연히 고가품에 대한 수요도 폭발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 있는 명품 패션 편집매장 분더샵에서 지난 10월께 임스 체어 전시를, ‘10 꼬르소 꼬모’에서 오는 13일까지 프랑스 가구 디자이너 샤를로트 페리앙의 전시를 연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국내 굴지의 패션 편집매장에서 옷과 액세서리가 아닌 의자와 가구 전시를 기획해 판매한 것은 가구에 대한 수요 증가세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인스타그램(@chair.only)에 실린 조형미 뛰어난 의자. 출처 인스타그램 @chair.only
“임스 체어 전시요? 기대 이상입니다. 에스엔에스(SNS)에서 이슈도, 판매도 많이 됐어요.” 임스 체어 전시를 기획한 분더샵 이연수 바이어의 말이다. 코로나19 이후, 인테리어 매출이 늘었느냐는 질문에 “확실히 늘었다”며 내년 매장 구성에도 인테리어 소품을 늘릴 계획이라고 한다.
찰스·레이 임스 부부가 디자인한 LCW 체어. 사진 오드플랫 제공
미국 가구 디자이너 찰스 임스(1907~1978)와 레이 임스(1912~1988) 부부의 ‘임스 체어’의 매력은 무엇일까? 제작된 지 수십년 된 의자를 50만~70만원씩 주고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 임스 체어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오드플랫의 박지우 대표는 이렇게 설명한다. “어떤 집에나 의자는 필요하죠. 그런데 기왕이면 예쁘고 의미 있는 물건을 놓고 싶잖아요. 임스가 만든 제품은 균형과 색감이 멋지고 수집가의 욕구를 자극하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만든 시기와 공장에 따라 디테일이 미세하게 달라요. 그걸 공부하고 찾아보는 재미가 있죠.” 그래서 물었다. 코로나 이후 의자 판매가 늘었느냐고. “다들 어려운 시기라 이런 이야기가 조심스러워요.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한 매출 타격이 적은 편입니다. 내년에는 사업 규모를 조금 더 키워볼 생각이고요.”
핀 율의 대표작 중 하나인 치프테인 체어.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9세가 앉았던 의자로 유명하다. 출처 인스타그램 하우스오브핀율
<덴마크 사람은 왜 첫 월급으로 의자를 살까>라는 책이 있다. 여기서 저자는 ‘인테리어와 행복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 설명한다. ‘인생은 바꿔 말하면 시간이고 그 시간을 보내는 곳은 공간이며, 공간이 달라지면 생활의 질과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것이다. 솔깃한 이야기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국내에서 유행한 ‘미드센추리 모던’(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1960년대까지 새로운 생활양식 디자인 운동의 총체) 가구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거의 북유럽, 특히 덴마크 가구에 한정됐다. 핀 율, 한스 베그네르(웨그너), 뵈르게 모겐센, 카이 크리스티안센 등 거장이라고 불리는 디자이너들이 실은 전부 덴마크 태생이다.
뵈르게 모겐센의 대표작인 스패니시 체어. 출처 덴스크 서울 인스타그램
하지만 가구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미드센추리 모던 가구의 외연도 점점 확장되고 있다. 말 그대로 ‘미드센추리’란 공간이 아닌 시대적인 개념이니까. 게다가 시기도 미드센추리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확장되고 있다. 프랑스 출신인 샤를로트 페리앙, 독일 바우하우스를 대표하는 인물인 마르셀 브로이어 같은 20세기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작품은 물론이고, 1980년대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꽃피운 멤피스 그룹의 작품들까지 속속 한반도에 도착하고 있다.
디지털과 에스엔에스의 발달로 가구를 사고파는 일도 쉬워졌다. 네덜란드나 독일 등지에 있는 판매자가 웹사이트를 개설해놓고 인스타그램으로 홍보하는 경우가 꽤 많다. 인스타그램 포스팅에는 대부분 ‘관심이 있으면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내라’는 홍보 문구가 같이 게재된다. 메시지를 보내면 가격을 안내해주고 입금을 하면(요즘은 앱을 통해 해외 송금을 하는 일도 쉬워졌다) 물건을 보내준다. 필자도 이런 방식으로 네덜란드에 있는 판매자에게 1960년대 필립스 조명을 샀다.
멤피스 밀라노풍의 알록달록한 스툴. 사진 스툴365 제공
재미있는 점은 점점 이런 판매자들의 해시태그에 한글이 등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독일에 있는 판매자가 게시물에 ‘#디터람스’ ‘#미드센추리’ 같은 한글 해시태그를 게재한다. 도대체 수요가 얼마나 많기에 영어와 한글 해시태그를 병행하는 걸까? 해외 빈티지 소품 판매자에게 물건을 구입하며 슬쩍 물어봤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구입하느냐고. 그의 대답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내가 팔고 있는 빈티지 제품 중 다수가 한국으로 갑니다.”
패트릭 나가르가 디자인한 의자. 출처 인스타그램 @chair.only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에스엔에스 채널은 정보를 얻는 창구인 동시에 소비의 놀이터다. 사람들은 가구를 사면 인스타그램 계정에 제품을 올린다. 비싼 제품일수록, 희소한 물건일수록 반응이 뜨겁다. 그렇게 특정 제품과, 디자이너에 대한 정보가 해시태그를 타고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현재 가구를 비롯한 다수의 인테리어 소품의 수요 증가 원인은 우리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며 가구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졌기 때문인 동시에 집에 머물며 에스엔에스 이용 시간이 증가한 탓이다.
전직 브라운 디자이너로 유명한 디터람스가 비초에를 위해 디자인한 소파. 출처 비초에 인스타그램
조형적인 의자를 소개하는 인스타그램 @chair.only나 @chair_fashion 같은 계정을 보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가격을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비교적 합리적인 값에 참신한 디자인을 선보이는 @jacksonchameleon이나 @stool365 계정을 볼 때면 당장 하나 사고 싶은 마음도 든다.
신혼부부들 사이에서 인기인 잭슨카멜레온의 페블 소파. 사진 잭슨카멜레온 제공
의자는 부피가 크고 주변 물건과 조화가 중요하기에 신중하게 사야 하지만, 중고 마켓의 폭발적인 성장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물건을 팔거나 처리하기가(무료 나눔 같은) 한결 쉬워졌다. 매매가 수월해지면서 유행 속도도 점점 가속화되고 있다. 전자상거래의 발전은 이런 흐름을 더욱 부추길 것이다. 언젠가 맞춤 소파를 저녁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 배송이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임건(<에스콰이어> 디지털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