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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C] 아이디어, 치약처럼 짜보자!

등록 2021-02-26 07:59수정 2021-02-26 09:22

김태권 그림
김태권 그림

기획서와 제안서 쓰기,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업로드, 영화 시나리오와 드라마 극본 공모, 웹소설과 웹툰 창작 등, 누구나 아이디어가 필요한 시대다. 앞으로 이 칼럼을 통해 ‘아이디어를 치약처럼 쥐어짜는 방법’을 알려드리려 한다. 이 글의 마지막 부분에 가면 독자님의 창의력을 ‘업그레이드’할 비결을 공개할 것이다. 그런데 그 전에 세가지 좋은 소식을 말씀드리겠다.

이 글을 쓰는 나는 창의적이기는커녕 영감이 안 떠올라 늘 마감에 허덕이는 사람이라는 말씀이 첫 번째 좋은 소식이다. “창의력도 없으면서 왜 이런 글을 쓰느냐”며 화를 내실지 모르겠다. 내 직업은 만화가다. 글도 쓴다. 회사에 다닌 일도, 사회단체를 도운 적도 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아이디어가 부족했다. 그래서 ‘아이디어 짜내는 법’에 대한 책을 모았다.

이 책에서 본 창의적인 방법들끼리는 공통점이 있다. 두 번째 좋은 소식이다. 우리는 그 방법을 익힐 수 있다.

셋째, 그 방법은 놀랄 만큼 간단하다. “아이디어란 오래된 요소들의 새로운 조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제임스 웹 영이 한 말이다. 작은 조각들이 이리 모이고 저리 모이며 엉켜 다니다가 갑자기 아름다운 모습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아이디어의 발상이란 만화경과 닮았다고 그는 말했다.

웹 영은 미국 광고계에서 활약하던 사람이다. 1939년에 이런 내용으로 책을 썼는데, 미국에서 여전히 읽힌다. 이 책에 대해 정재승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을 서로 연결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아이디어 생산법’이다.” 최근 뇌과학의 연구도, 2300년 전에 탄생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고 덧붙였다.

인간의 가장 창조적인 작업 중 하나가 시다. 특히 ‘은유’라는 기법이 특히 그렇다. 윤동주의 시 <햇비>에는 ‘하늘 다리 놓였다/ 알롱알롱 무지개’라는 구절이 있다. ‘무지개는 하늘의 다리’가 은유의 예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 관계도 없는 ‘내’가 괴로운 까닭은? 역시 은유 때문이다. 시인이 보기에,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와 인간은 닮았다. 미국 시인 테일러 말리는 학생의 시를 소개했다. ‘아버지는 깨진 거울/ 상처 주는 날카로운 파편들마다/ 나의 얼굴이 비춰 보인다.’ 은유는 힘이 세다.

“그렇다면 은유 기계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십여년 전에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을 읽다가 나는 이런 상상을 했다. 세상의 모든 이름을 작은 공에 적어 큰 통에 담아두고, 통을 흔들어 공을 두개씩, 세개씩 뽑아내는 거다. 공으로 로또 번호를 뽑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때는 이런저런 이름들을 무작위로 연결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테일러 말리는 정말로 비슷한 일을 한다. ‘은유 주사위’를 만들어 글쓰기 교실에서 사용한다는 것이다.

컴퓨터로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윤동주의 글에서 두 번 이상 사용한 명사를 모아, 심상이 뚜렷한 시어 127개를 추렸다. 무작위로 은유를 생성해주는 프로그램을 공개한다. QR코드나 링크(바로가기)에 접속해 버튼을 눌러보시길. 기계가 시구를 뱉어낸다. ‘숲은 밤의 고향’이나 ‘세계는 햇빛의 이야기’처럼 그럴싸한 것도, ‘노래는 병아리의 슬픔’처럼 우스개 같은 것도 있다. 백만건이 넘는 기계의 말더미 가운데 ‘창조적인 목소리’ 한줌을 골라내는 일은 아직 인간의 몫이긴 하겠다.

김태권(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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