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ESC

[ESC] 증명사진이 증명하는 것은?

등록 2021-05-20 04:59수정 2021-05-20 09:44

“가장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큰 고민 없이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라고 답한다. 1998년 1월 개봉 때 서울 신촌 그랜드 백화점 꼭대기에 있던 그랜드시네마에서 처음 관람했다. 재수 시절 짝사랑했던 누나와 함께였는데, 눈물을 찔찔 짜는 바람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누나도 울었지만. 며칠 뒤, 나는 다시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다. 내 인생 최초의 ‘n차 관람’ 영화였다.

영화는 ‘증명사진’을 중요한 소재로 활용한다. 죽음을 앞둔 정원(한석규)은 스스로 영정 사진을 찍는다. 영화 중간 영정 사진을 찍는 할머니의 에피소드도 나온다. 사진을 찍고 돌아갔다가 한밤중에 사진관을 다시 찾은 할머니는 정원에게 “나 죽을 때 쓸 사진이야, 예쁘게 다시 찍어줘”라고 말한다. 이 사진 속 주인공의 공통점은 모두 웃고 있다는 것. 마지막 모습이 웃는 얼굴로 기억되길 바라는 사람의 마음일 게다.

MZ세대 사이에서 증명사진 찍기가 유행이라길래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을 꺼내봤다. 목불인견. 사진을 준비하지 못해 급하게 지하철 즉석 사진기에서 찍은 사진의 품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막 검거된 연쇄 살인범처럼 눈에 힘이 들어간 ‘인상파’적 표정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창피할 정도였다.

최근 몇달을 기다려야 사진을 찍을 수 있다는 인기 사진관의 사진을 보니 입이 쩍 벌어졌다. 다양한 포즈와 표정에서 개성이 한껏 묻어 나왔다. 누군가는 과도한 ‘연출’이라며 눈을 흘기지만, 뭐 어떤가. 과도한 인상파보다 훨씬 보기 좋은데. 그동안 우리는 무엇을 ‘증명’하려고 했던 걸까. MZ세대의 증명사진이 답을 던져주고 있다. 이정국 팀장 jgle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ESC 많이 보는 기사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 1.

숲 여행도 하고 족욕도 하고…당일치기 기차 여행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 746자 2.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 746자

쉿! 뭍의 소음에서 벗어나 제주로 ‘침묵 여행’ 3.

쉿! 뭍의 소음에서 벗어나 제주로 ‘침묵 여행’

[허지웅 칼럼] 삶의 바닥에서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 4.

[허지웅 칼럼] 삶의 바닥에서 괜찮다는 말이 필요할 때

[ESC] 남향집만 좋은 걸까? ‘북향집’의 장점도 있답니다 5.

[ESC] 남향집만 좋은 걸까? ‘북향집’의 장점도 있답니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