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층 사이서 인기인 서울 중구 황학동 중앙시장의 ‘술술 317’. 사진 신소윤 기자.
2000년대 중반 와인 열풍이 한국을 휩쓴 적이 있다. 만화 〈신의 물방울〉의 역할이 컸다. 한 재벌 회장이 임직원에게 이 만화를 선물하면서 “공부하라”고 지시한 것이 알려지면서 더 화제였다. 당시 얼마나 와인이 인기였냐면, 삼성전자가 판매했던 텔레비전 이름이 ‘보르도’였다. 지금 보면 좀 남우세스러울 정도.
술 좋아하는 직업군 가운데 하나인 기자들도 당연히 와인 마시기에 동참했다. 선배들이 종종 와인바에서 술을 샀다.(주로 2차 이후) 남은 기억은 대체로 안 좋다. 한 선배는 ‘드라큘라주’를 시연하겠다며, 맥주에 와인을 섞고 ‘원샷’을 한다음 씨익 웃으며 이 사이로 흘러 내리는 빨간 포도즙을 과시했다. 드라큘라가 흡혈을 하듯, 드라큘라주는 그날의 기억을 빨아 먹었다. 다음 날의 숙취는 약으로 해결될 정도가 아니었다. 와인 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퍼진 거품 인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한동안 아무도 와인을 찾지 않았다. ‘머리 아픈 술’로만 기억됐다.
그렇게 주류 시장에서 잊혀졌던 와인이 2010년 이후 점점 성장하더니 이젠 대형마트에서 맥주의 매출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다고 한다. 와인과 함께하는 고급 정찬인 파인 다이닝 문화가 널리 퍼진 탓도 있지만, 결정적 한 방은 코로나19로 인한 홈술·혼술의 급증이다.
현재의 와인 열풍은 40대 이상 중년 남성이 주도했던 2000년대 중반과는 조금 다르다. 유행을 이끄는 MZ세대는 와인을 좀 더 싸게 사기 위해 기꺼이 휴가를 내고, 시장 바닥에서 떡볶이에 와인 마시는 것을 꺼리지 않는다. 일상으로 와인이 파고 든 것이다. 드라큘라주를 먹던 와인 문화는 이제 ‘라떼의 추억’이 됐다.
이정국 팀장 jgle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