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겨울, 붉은 곡식의 재발견
[생활2.0] 수수·팥=복된 곡물
콜레스테롤 억제에 쌓인 노폐물도 제거
다이어트용 급부상…과유불급 명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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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겨울엔 붉은 곡식을 즐겨 먹었다. 대표적인 게 팥과 수수다. 팥을 삶아 으깬 뒤 앙금을 내려 만드는 팥죽·팥칼국수·찐빵·호빵은 추울 때 특히 생각나는 음식이다. 정월대보름에는 팥과 수수를 섞어 오곡밥을 먹는다. 팥소를 넣어 기름에 부쳐 만드는 수수부꾸미도 겨울철 대표 간식이다.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왜 수수와 팥을 겨울에 즐겨 먹었을까? 먹기만 한 게 아니다. 팥은 미용 재료로도 쓰였다. 조선시대 양반집 여성들은 팥가루를 얼굴에 발라 세안제로 썼다. 수수는 추운 날 속을 뜨끈하게 데워주는 고량주와 문배주의 원료다. 붉은 곡식, 팥과 수수의 비밀을 알아본다.
■ 독소 배출에 효과적인 팥
요즘 팥이 새로운 다이어트용 식품으로 인기다. 팥 삶은 물을 받아두었다가 보리차처럼 마시고, 삶아서 그냥 밥 대신 퍼먹기도 한다. 가루를 내서 팩으로도 쓴다. 몸을 마르게 하고, 부종에 효과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 옥도훈 박사(오케이한의원)는 “팥은 포만감을 줘 과식을 예방하고, 몸의 부기와 몸 안의 노폐물 제거에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해독 성분이 있고 신진대사를 원활하게 해 새집증후군 등으로 머리가 아플 때 팥을 권하기도 한다. 숙취 해소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팥은 사람의 체질과 상관없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품이다. 이숙연 삼육대 약대 교수는 “팥은 약성이 평하다고 하는데, 이는 누구나 복용이 가능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영양학적으론 비타민 B1이 많아 탄수화물 소화를 돕는다. 또 팥에 들어 있는 안토시아닌과 사포닌 성분은 장운동을 원활히 한다.
물론 지나치면 좋지 않다. <동의보감>에서는 팥을 너무 오래 먹으면 몸이 검어지고 마른다고 했다. 팥 다이어트를 장기간 했다가 피부가 거칠어지고 기력이 쇠해졌다는 사람들도 있다.
■ 염증 제거에 좋은 수수
겨울엔 신체 활동량이 적어 몸에 지방 따위가 쌓이기 쉽다. 따라서 불필요하게 쌓이는 것들을 수시로 배출해 줘야 한다. 이럴 때 수수가 제격이다. 이숙연 교수는 “수수는 염증을 제거하는 효능과 신경안정 작용, 해독력까지 있는 생약”이라고 말했다. 옛사람들은 등창이나 곪은 상처에 수숫가루를 볶아서 발랐다. 미국 인디언들도 수수엿을 만들어 염증을 치료하고 독소를 밖으로 빼냈다고 한다. 심한 기침을 가라앉히는 데 썼다는 옛 문헌도 있다. 기침을 낫게 하는 성분과 유사한 청산배당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옥도훈 박사는 “북한에서 발간한 <한의학대사전>을 보면 수수는 구토와 설사를 멎게 하고 이질, 배뇨장애에 쓴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한다. 수수의 염증 제거와 이뇨작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수수가 성인병 예방 및 암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농촌진흥청 작목기술과 정동완 지도사는 “수수는 강한 항산화 활성이 있어 콜레스테롤 관련 효소 활성을 억제한다고 보고됐다”고 말했다. ■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잡곡 전통적으로 팥과 수수는 건강을 기원하는 식재료로 쓰였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등 국빈 만찬 때 디저트로 내놓은 떡 대부분에 팥소를 넣었다. 그는 “팥앙금의 달고 신맛을 외국인들이 특히 좋아한다”며 “팥을 쓴 건 양국의 우호 증진을 바라는 뜻도 있다”고 말한다. 붉은색은 전통적으로 잡귀를 쫓고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엄마들이 아토피에 좋다며 주로 해 먹이는 수수팥단자는 건강을 비는 대표적 상징 음식이다. 서울 지역에선 첫돌 때 수수팥떡을 밟으면 아이가 잘 넘어지지 않는다고 해 일부러 밟게 했다. 팥고물에 떡을 굴리며 “우리 아이 남의 눈에 꽃처럼 보이게 비나이다”라고 기원했다. 폐를 튼튼하게 하고 잡귀를 쫓기 위해 10살이 될 때까지 생일마다 수수팥떡을 해 먹였다. 기운을 돋우는 데도 붉은 곡식이 주로 쓰였다. 자연치유 교육전문가 이석치씨는 “우리 조상들은 음기가 많은 겨울철에 양기가 많은 붉은 곡식을 먹어 음양의 조화를 꾀했다”고 한다. 수수와 팥은 맛도 좋고, 영양도 듬뿍 담긴데다 무병장수까지 기원하는 ‘복된 곡물’이었던 셈이다.
윤숙자 소장과 함께 하는 수수팥단자와 수수부꾸미 팥 삶은 첫 물 버리고 수수는 박박 문질러야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은 떡 박물관, 떡카페 질시루 등을 열어 한국 떡을 세계화·표준화하는 노력을 해왔다. 그가 권하는 겨울철 대표 떡은 수수부꾸미와 수수팥단자(수수팥단지). 수수부꾸미는 수수 재배를 많이 했던 황해도의 특식이다.
윤 소장은 “수수부꾸미처럼 지지는 떡은 지방을 보충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고 찹쌀이 부족한 겨울에 수수는 떡을 해 먹기에 좋은 식량이었다”고 말한다. 수수부꾸미는 차게 두었다가 석쇠에 구운 뒤 조청을 찍어 먹어도 별미다.
음식궁합에서도 수수와 팥은 잘 어울린다. 수수는 쓴 맛, 팥은 시고 단맛이 강해 함께 조리하면 각각의 약점이 감춰진다. 단, 유의할 점이 있다. 팥을 삶을 때는 한 번 삶아 끓인 물을 버려야 한다. 잡냄새를 없애고 설사를 일으킬 수 있는 사포닌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수수는 보리쌀 씻듯이 박박 문질러 씻어야 맛이 좋다.
■ 수수팥단자
재료: 찹쌀가루 1컵, 찰수숫가루 2컵, 소금 1작은술, 붉은팥 2컵, 소금 1/2큰술, 설탕 4큰술
① 찹쌀은 3~4번 깨끗이 씻은 후 물에 12시간 정도 담갔다가 가루로 빻는다.
② 찰수수는 보리쌀 씻듯이 박박 비벼서 문질러 씻어 물에 담갔다가 붉은 물이 우러나면 3~4번 정도 물을 갈아 주면서 12시간 정도 담갔다가 물기를 빼고 가루로 빻는다.
③ 찹쌀가루와 찰수숫가루를 섞어 소금을 넣고 체에 내린다. ④ 가루를 익반죽하여 지름이 2.5㎝ 정도 되도록 둥글게 빚어 놓는다.
⑤ 붉은팥은 삶아서 소금을 넣고 찧은 다음 체에 내려서 설탕을 넣어 버무린다.
⑥ 만든 경단을 끓는 물에 삶아 떠오르면 뜸을 들여 꺼내 찬물에 헹구어 물기를 빼고 고물을 묻혀 낸다.
■ 수수부꾸미
재료: 찹쌀가루 1컵, 찰수숫가루 2컵, 소금 1작은술, 팥앙금 100g, 식용유 1/2컵, 설탕 1/2컵, 물 1/2컵, 대추 5개, 호박씨 3큰술
①~③ 찰수수경단과 동일
④ 가루를 익반죽하여 지름이 6㎝ 정도 되도록 동글납작하게 빚어 놓는다.
⑤ 팥앙금을 밤톨만하게 길게 빚어 소를 만들어 놓는다. (팥앙금은 직접 내려도 좋고, 방산시장에서 따로 살 수도 있다)
⑥ 팬에 기름을 두른 다음 빚어 놓은 반죽을 넣고 한 면이 익으면 뒤집어 가운데 소를 넣고 반을 접어 지진다.
⑦ 시럽은 설탕과 물을 1:1로 젓지 말고 끓여 만든다.
⑧ 지져낸 떡에 준비한 대추채, 호박씨 등으로 고명을 놓고 시럽을 발라 낸다.
글 이유진 기자 frog@hani.co.kr
사진 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겨울엔 신체 활동량이 적어 몸에 지방 따위가 쌓이기 쉽다. 따라서 불필요하게 쌓이는 것들을 수시로 배출해 줘야 한다. 이럴 때 수수가 제격이다. 이숙연 교수는 “수수는 염증을 제거하는 효능과 신경안정 작용, 해독력까지 있는 생약”이라고 말했다. 옛사람들은 등창이나 곪은 상처에 수숫가루를 볶아서 발랐다. 미국 인디언들도 수수엿을 만들어 염증을 치료하고 독소를 밖으로 빼냈다고 한다. 심한 기침을 가라앉히는 데 썼다는 옛 문헌도 있다. 기침을 낫게 하는 성분과 유사한 청산배당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옥도훈 박사는 “북한에서 발간한 <한의학대사전>을 보면 수수는 구토와 설사를 멎게 하고 이질, 배뇨장애에 쓴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한다. 수수의 염증 제거와 이뇨작용을 염두에 둔 것이다. 수수가 성인병 예방 및 암 억제에 효과가 있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농촌진흥청 작목기술과 정동완 지도사는 “수수는 강한 항산화 활성이 있어 콜레스테롤 관련 효소 활성을 억제한다고 보고됐다”고 말했다. ■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잡곡 전통적으로 팥과 수수는 건강을 기원하는 식재료로 쓰였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은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 등 국빈 만찬 때 디저트로 내놓은 떡 대부분에 팥소를 넣었다. 그는 “팥앙금의 달고 신맛을 외국인들이 특히 좋아한다”며 “팥을 쓴 건 양국의 우호 증진을 바라는 뜻도 있다”고 말한다. 붉은색은 전통적으로 잡귀를 쫓고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엄마들이 아토피에 좋다며 주로 해 먹이는 수수팥단자는 건강을 비는 대표적 상징 음식이다. 서울 지역에선 첫돌 때 수수팥떡을 밟으면 아이가 잘 넘어지지 않는다고 해 일부러 밟게 했다. 팥고물에 떡을 굴리며 “우리 아이 남의 눈에 꽃처럼 보이게 비나이다”라고 기원했다. 폐를 튼튼하게 하고 잡귀를 쫓기 위해 10살이 될 때까지 생일마다 수수팥떡을 해 먹였다. 기운을 돋우는 데도 붉은 곡식이 주로 쓰였다. 자연치유 교육전문가 이석치씨는 “우리 조상들은 음기가 많은 겨울철에 양기가 많은 붉은 곡식을 먹어 음양의 조화를 꾀했다”고 한다. 수수와 팥은 맛도 좋고, 영양도 듬뿍 담긴데다 무병장수까지 기원하는 ‘복된 곡물’이었던 셈이다.
윤숙자 소장과 함께 하는 수수팥단자와 수수부꾸미 팥 삶은 첫 물 버리고 수수는 박박 문질러야
한국전통음식연구소 윤숙자 소장
■ 수수팥단자
수수·팥·잡곡
수수팥단자(위), 수수부꾸미(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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