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보건소 주민 건강교실
[생활2.0] 서산 보건소 주민 건강교실
기공체조·자세교정 기본…가슴에 담긴 ‘화’ 풀어내
농번기 피해 수업…효과좋아 여기저기서 연장 요청
기공체조·자세교정 기본…가슴에 담긴 ‘화’ 풀어내
농번기 피해 수업…효과좋아 여기저기서 연장 요청
충남 서산시에서 주민 건강 증진과 관련해 뜻있는 실험이 진행중이다. 서산시 보건소가 정부의 지원을 받아 2년째 벌이고 있는 한의약 건강증진 허브보건사업으로 관절염·전립선질환 예방, 무병장수 마을 만들기 등 5가지 지역 특화 사업과 중풍 예방교실, 한의학 육아교실 등 7가지 기본 사업으로 이뤄져 있다.
겉으로 보면 다른 보건소에서 벌이는 사업과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유상곤 시장의 공약사업으로 보건소에서 추진중인 프로그램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의료 소외지역인 읍면 지역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중풍, 관절염, 전립선 질환 예방을 위해 진행되는 ‘건강교실’이 그것이다. 농번기를 피해 11월부터 2월까지 3개월 동안 열리는 이 프로그램은 몸의 유연성을 높여주는 기공체조, 걸음걸이와 자세 교정, 호흡을 통한 근육 이완, 마음 다스리기 등으로 짜여 있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몸과 마음을 함께 다스리는 한의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통해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서양의 심신 의학 개념을 함께 담고 있어서 그런지 효과가 아주 뛰어나다고 한다.
11일 오후 1시30분 운산면 여미리 마을회관. 4개월째 주 3회 ‘건강교실’이 열리는 마을이다. 다른 지역의 ‘건강교실’은 2월에 대부분 ‘종강’을 했지만 여미리는 주민들의 거듭된 요청으로 ‘수업’을 한 달 더 늘렸다고 한다. 20여명의 주민은 마을회관에 들어서자 양말을 벗고 걷기 연습부터 시작했다. 이는 바닥에 그려진 선과 발자국을 따라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천천히 걷는 것으로 틀어진 자세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했다.
‘수업’은 강사인 고정길씨의 안내에 따라 긴장된 근육을 이완시키고 기혈순환에 도움이 되는 기체조로 시작됐다. 한 할머니가 앞으로 숙이는 동작을 하다 “나는 왜 이렇게 잘 안되지”라고 말하자 고씨는 곧바로 “부정적인 말은 안 하기로 했잖어유”라며 한번 더 그런 말을 하면 앞에 나와서 숙제를 하셔야 한다고 주의를 준다. 숙제는 다름 아니라 ‘나는 나를 사랑해’라고 열 번 외치는 것이다. 농촌 주민들의 자존감을 높이기 위한 장치다. 체조가 끝난 뒤에는 요통, 관절염, 전립선 등에 도움이 되는 자세를 취한 상태에서 호흡을 한다. 고씨는 수업 중간 중간 주민들의 몸 상태를 봐가며 집에 가서 해야 할 ‘숙제’를 낸다. ‘건강교실’의 ‘방학’인 농번기 동안 혼자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건강교실은 주민들의 가슴에 담긴 화를 푸는 것으로 수업을 마친다. 두 손을 하늘로 뻗은 채 손목을 흔들다 마치 머리 위에 든 바위를 던지듯이 앞쪽으로 뿌리는 것이다. 고씨가 “그동안 마음속에 쌓였던 화, 속상함, 걱정 등을 함성과 함께 던지라”고 하자 주민들은 “야”라고 외치며 머리 위에 들고 있던 ‘마음의 바위’를 앞으로 던졌다. “아 이것을 하고 나면 속이 다 시원해지는 것 같어유.” 인영식(77) 할머니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건강교실’에서는 감정자유기법이라고 하는 이에프티(EFT: Emotional Freedom Technic)도 쓰인다. 이는 미국에서 개발된 치료법으로 감정과 관련된 경락의 시작점과 끝점을 두드려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몸에 쌓인 감정의 앙금이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
과학적인 분석이 진행중이지만 여미리 주민들이 느끼는 효과는 대단했다. 김재희(75) 할머니는 “왼쪽 무릎이 아프고 굽혀지지 않아 걷지 못해서 병원에 갔더니 연골이 다 닳아 어찌할 방법이 없다고 했는데 여기서 운동을 한 뒤 지금은 책상다리를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책상다리 자세를 취하며 본인도 신기한지 연방 웃었다. 윤순자(70) 할머니도 “집에서 마을회관까지 1㎞를 오는데 숨이 가빠 세 번을 쉬어야 했지만 더 먼 거리도 단숨에 간다”고 말했다. 또 수전증에다 관절이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하던 최윤열(76) 할머니는 통증과 손떨림이 크게 줄었고 소화력이 좋아져 식사량도 크게 늘었다고 했다. 또 2006년 유방암 수술 뒤 요양을 겸해 고향으로 내려온 이응미(46)씨는 “손발이 차가워 잘 때도 양말을 신고 잤으며 발에 각질이 너무 많았는데 지금은 손발이 따뜻해지고 각질도 없어졌다”고 좋아했다. 이씨는 이 프로그램의 마니아가 되어 강사가 없을 때 주민들을 위해 조교의 구실도 맡고 있다. 마을 부녀회장인 김순례(58)씨는 “40명 이상이 참여했는데 병원에 가는 횟수가 많이 줄어들었을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이 효과를 봤다”며 “마을 사람들이 서로 싫은 소리도 잘 못할 정도로 사이가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여미리와 비슷한 프로그램은 2007년 보건소 자체 예산으로 5개 리에서 시작된 뒤 정부의 사업 공모에 당선되면서 35개 리로 확대됐다. 효과는 대부분 여미리와 비슷하다고 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보건소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아주 만족한다는 답변이 98%에 달할 정도로 뜨겁다. 음암면 문양리와 여미리 등 일부 마을에서는 ‘종강’을 하는 날 시장과 보건소장을 초청해 마을 잔치를 열어 시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을 정도다.
이종만 보건소장은 “설문조사 결과 아주 만족한다는 답이 98%에 달할 정도로 호평을 받고 있다”며 “건양대 의대와 원광대 한의대와 협력 사업을 추진중인데 내년쯤 이 프로그램의 예방의학적 성과를 발표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산/글·사진 권복기 기자 bokk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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