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2.0] 옥스퍼드대 연구팀 “혈관벽이 암 전이 토양 구실”
암전이는 종양이 처음 생긴 곳에서 벗어나 몸의 다른 부위로 퍼지는 현상을 말하는데, 암이 무서운 이유도 이런 전이 때문이다. 그런데 암세포는 뇌에 잘 전이하는 특성을 띠고 있다. 암 종양의 뇌 전이는 뇌에서 생겨난 종양의 사례보다 10배나 더 많으며, 모든 암의 20%가량이 결국엔 중추신경계로 전이한다는 보고도 있다. 왜 암은 다른 부위보다도 뇌에 더 잘 전이할까?
의학계의 오랜 물음을 푸는 단서가 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숀 카보널 박사 연구팀은 최근 생쥐와 사람의 조직 시료를 이용해 암세포가 신경세포에서 어떻게 자리를 잡아 증식하는지 살피는 실험실 연구를 벌였다. 유방암, 림프종 등 여러 종류의 암세포들을 써서 전이 과정을 세밀히 관찰했다. 그랬더니 암세포는 신경세포가 아니라 혈관 벽에 달라붙어 증식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기존 학설과는 다른 결과라고 연구팀은 전했다.
그동안 의학계에선 암세포와 뇌 신경세포 사이에 ‘씨앗과 토양’ 같은 친화성이 있다는 가설로 암세포의 뇌 전이를 설명해왔다. 뇌 전이는 우연히 일어나는 게 아니라 특정 암세포(씨앗)가 쉽게 자리를 잡아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을 신경세포(토양)가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번 연구팀은 “이런 학설과 달리 신경세포나 신경물질이 아니라 혈관 벽(기저막)이 암 전이의 ‘토양’ 구실을 하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연구자들은 암세포가 뇌의 혈관 네트워크를 사용함으로써 자신만의 혈관을 새로 만들지 않고도 증식에 필요한 영양소와 산소를 얻을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에선 암세포의 외부 표면에 있는 ‘인테그린’이라는 단백질이 암세포가 혈관 벽에 달라붙도록 돕는 물질로 작용한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인테그린 단백질이 암의 뇌 전이를 막거나 늦추는 약물의 표적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연구팀은 기대했다. 이 연구 결과는 온라인 공개 접근 과학저널인 <플로스 원> 최근호에 발표됐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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