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2.0]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지 조건반사 실험 결과 소개
뇌 손상으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들 가운데 일부는 학습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의학계의 보고가 나왔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최신호에 발표한 연구논문에서, 아르헨티나와 영국 신경과학자들은 식물인간 상태의 환자 22명한테 어떤 소리를 들려준 뒤 눈동자에 바람을 쐬는 시험을 되풀이했더니 환자들이 소리만 듣고도 눈 근육을 움찔하며 반응했다고 보고했다. 식물인간 환자들이 소리 자극이 있고 난 직후에 바람 자극이 이어질 것을 알고 미리 눈 근육을 움찔했다는 것이다. 실험에선 전극 장비로 눈 근육의 미세한 반응을 탐지했다.
이런 시험은 종소리만 듣고도 먹이가 생기리라 기대해 침을 흘리는 ‘파블로프 개’의 조건 반사 실험을 응용한 것이다. 연구팀은 식물인간 환자의 반응이 무의식 반응이 아니라 ‘학습’을 통한 조건 반사임을 입증하기 위해, 마취 상태에서 무의식에 빠진 환자들한테도 같은 시험을 했으며 이때엔 아무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식물인간 환자들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부는 기억과 학습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라며, 반응을 보인 환자들은 건강 개선 가능성도 그만큼 클 것으로 풀이했다. 이런 점에서 조건 반사 시험이 고급 검사장비 없이도 환자의 회복 가능성을 어느 정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간편한 검사법이 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일부 과학자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태도를 보였다. 영국의 한 신경과학자는 <비비시>(BBC)와 한 인터뷰에서 “흥미로운 연구 결과”라면서도 데이터가 불명확해 큰 규모의 연구가 이뤄져야 신뢰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3년 전에도 케임브리지대학 연구팀이 식물인간 환자들이 스스로 움직이는 능력을 지니지는 않는다 해도 사실상 의식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고 전했다.
오철우 기자 cheol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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