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레코드 상점이 몰려 있는 서울 회현지하상가에서 14일 손님들이 물건을 살펴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뉴스 쏙] ‘땅속의 명당 상권’ 경쟁입찰의 진실
서울시 “운영권 소수 독점 안된다” 명분 내세워
수백곳 묶음입찰 예고…대기업 싹쓸이 불보듯 장사 안되는 강북쪽 상가만 수의계약 3년 유예
점포들 “억대 권리금 한푼 못건지고 내쫓길판” 요즘 서울의 땅밑은 전쟁 중이다. 지하 상권의 주도권을 놓고 서울시와 상가 주인들이 벌이는 한판 승부가 좀처럼 끝날 줄을 모른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지하도 상가는 하루 수백만에 이르는 유동인구가 잠재고객인 황금 시장이다. 그래서 지하도 상가를 놓고 벌어지는 힘겨루기에는 숨은 복병이 있다. 호시탐탐 이 목 좋은 자리를 노려온 유통 대기업들이다. 서울시는 그 사이에서 일단 상인들과 운영 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공공 공간인 지하도 상가에 대해 무작정 상인들의 기득권을 인정할 수 없으며, 경쟁 입찰로 모두에게 이용 기회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하도 대전, 도대체 뭐가 문제고 어떤 이권들이 그 속에 있는 걸까? “지하도 상가, 다 죽었어요” “먹고 죽으려 해도 먹을 게 없어요.” 서울 회현 지하상가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상인 ㄱ아무개씨는 “우리도 좋아서 (이 지하상가에)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ㄱ씨의 점포 유리창에는 요즘 ‘경기 불황에 상인들 다 죽이나’라는 서울시를 향한 항의문이 붙어 있다.
상가 사람들과 서울시의 분쟁을 잘 모르는 손님들은 살벌해진 상가 풍경에 의아한 표정들이다. 이런 모습은 서울 중심가의 다른 지하도 상가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 상인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데는 플래카드에는 등장하지 않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 상인은 “도심 지하상가가 물 좋았다는 것은 이제 다 옛말”이라며 “솔직히 이 상가를 빨리 뜨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러면 왜 내쫓지 말라고 구호를 붙였느냐고 묻자 “여기에 쏟아부은 게 얼만데…, 권리금 때문에 그냥 나갈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하상가 점주들은 유동인구가 계속 줄어 장사가 예전만 못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상인은 “예전에는 지하상가에 입점해서 빌딩 지었다고 하는데 다 옛말”이라고 예전의 영화를 들려줬다. 그 시절의 증거가 바로 권리금인데 경쟁입찰제로 바뀌면 이 권리금이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점포의 양도·양수가 허용돼 목이 좋은 곳은 권리금이 1억원을 넘기도 했다. 경쟁입찰이 도입되면 권리금은 인정이 안 되고 30년 전 지하상가가 처음 생겼을 때의 보증금 1천만~2천만원만 돌려받게 될 수 있다. 백화점 재벌들에겐 매력덩어리 생각보다 장사가 잘 안된다는 이 지하상가를 유통 재벌들이 노리는 까닭은 뭘까? 도심 백화점, 쇼핑몰과 연결하면서 생기는 상승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예전보다는 줄었다고 해도 적잖은 유동인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서울시내 주요 지하상가들은 대부분 대기업 백화점들과 바로 연결된다. 회현 지하상가는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붙어 있고, 강남터미널 지하도상가는 신세계 강남점, 명동 지하상가는 롯데백화점 본점, 잠실 지하상가는 롯데 잠실점, 강남역 지하상가는 최근 이전한 삼성타운과 연결된다. 대기업들은 겉으로 욕심을 드러내지 않지만 지하상가 공간을 늘 탐내왔다. 지난해 4월에는 신세계백화점이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서 회현 지하상가 점포 현황 자료를 몰래 빼냈다가 드러나 상인들이 경찰에 고발하는 일도 벌어졌다. 신세계 관계자는 “지하상가 매입을 검토했지만 법적 권리관계가 복잡하고 상인들을 내보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중단했었다”며 “서울시가 문제를 풀어 우리가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롯데 쪽도 비슷한 입장이다. 을지로입구역부터 신세계백화점에 이르는 남대문로 600m 구간은 하루 유동인구가 200만명에 이르지만 횡단보도가 전혀 없어서, 지하도 상가를 양대 백화점이 인수할 경우 시너지 효과는 상당할 전망이다. 상인들은 삼성타운과 연결된 강남역 지하상가에 대해서는 더욱 강하게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강남역 지하상가는 하루 유동인구가 40만명에 이르는 대형 상권이다. 서울시는 지난 9일 이곳 강남역 지하상가를 비롯해 한강 이남의 지하상가 5곳을 개별 점포 단위가 아니라 상가 전체로 묶어 입찰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강남역 지하상가의 점포 권리금은 점포 위치와 크기에 따라 수억원에서 10억원대에 이른다. 상가 전체를 묶어 입찰하게 되면 190개 점포의 권리금을 5억원씩만 계산해도 모두 1천억원 가량이다. 여기에 전체 상가를 모두 차지하는 프리미엄까지 얹으면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대기업의 차지가 될 것이 뻔하다는 것이 상인들의 논지다. 지하도의 태생에서 비롯된 예고된 싸움 서울시 지하도 상가를 둘러싼 다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2년 이명박 시장 시절에도 공개경쟁 입찰을 하겠다 했지만, 상인들의 거센 반발로 5년 재계약에 합의하면서 “5년 이후의 문제는 차기 서울시장과 협의한다”고 봉합했다. 다툼이 잠시 미뤄진 것일 뿐 똑같은 분쟁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지하도 상가의 역사를 살펴보면 논란이 거듭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서울에 지하도 상가가 최초로 들어선 것은 1967년, 온 서울을 공사장처럼 파헤쳐 ‘불도저 시장’이라고 불렸던 김현옥 시장 때였다. 김 시장은 이젠 철거돼 사라진 청계고가도로, 짓자마자 무너진 와우아파트, 도심 속 흉물로 비난받은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시설 세운상가 등을 세워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개발독재 시기에 어찌됐든 일은 열심히 했다는 평도 들었다. 그가 시장 초기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이 자동차 위주의 도심 정비로, 재임 4년 동안 육교 144개와 함께, 일본 도쿄와 오사카의 대규모 지하상가를 본떠 지하상가 3곳을 건설했다. 그러다가 도심 지하상가가 다시 많이 생기게 된 것은 구자춘 시장 때였다. 당시 정부는 전쟁이 벌어질 경우 서울을 포기하는 전략에서 서울을 사수하며 전쟁을 치르는 ‘전시 수도 사수론’으로 전략을 바꿨다. 이에 따라 전쟁이 터졌을 때 방공호 기능을 갖춘 시설을 마련한 것이 바로 남산 1, 2호 터널이었고, 지하상가도 그 연장선에서 계획했다. 겉으로는 도심 보행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면에는 공공기관들이 비상시 이곳으로 옮겨가고 비상 식량·용수의 비축시설로 활용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그런데 당시 시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서울시는 기부채납 방식으로 민간자본에 건설을 맡겼다. 건설업체들은 상인들의 분양 보증금을 걷어 마련한 공사대금으로 지하상가를 완공했고, 이후 임대료를 받으며 20년을 운영한 뒤 서울시에 기부했다. 그래서 민간기업이 상가를 관리하는 동안엔 점포의 양수·양도가 허용되면서 권리금이 관행적으로 허용됐다. 이후 상가를 인수한 서울시는 점포의 양수·양도를 허가사항으로 만들어 운영하다 이를 금지하고 권리금과 기존 계약을 인정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웠다. 공유재산 정당 운영 당연 vs 생존권 차원 기득권 보호 서울시는 지난해 4월 “우선 계약기간이 5월31일로 끝나는 강남역 지하도 상가 35개 점포를 시작으로 계약방법을 일반 경쟁입찰로 일괄 전환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부터는 서울시 지하상가 29곳의 점포 2783곳 중 계약이 만료됐지만 계약 갱신을 요구하며 점포를 비우지 않는 1012곳의 상인을 대상으로 가게를 비우라는 명도 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지난달 31일로 계약이 종료된 960개 상가에 대해서도 명도 소송을 준비 중이다. 서울시는 지하상가는 공유재산이므로 수의계약이 아닌 공개입찰로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지하도 상가는 공유재산으로 일반시민 누구라도 운영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1998년 만들어진 서울시 지하도 상가조례에도 임대차 계약 때 일반 공개경쟁 입찰이 원칙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노후한 지하도 상가를 현대식 쇼핑센터로 발전시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할 필요성도 크다고 한다. 서울시 김양수 도로재산팀장은 “지하상가별로 평가 작업을 거쳐 특성을 살려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맞서 상인들은 “10년 넘게 고생해 상권을 일궈놨는데 옛날 보증금만 돌려주면서 내보내고 일반 경쟁입찰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상인들의 반발로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자 서울시는 3년 유예안을 내놨다. 서울시 도로행정담당관실 관계자는 “강남역, 강남터미널, 영등포역의 5곳 지하상가는 예정대로 공개 경쟁입찰을 하지만 강북 쪽 지하도 상가는 경기불황을 고려해 3년간 수의계약을 유예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상인들은 여전히 강경하다. 유예 조건으로 양수·양도 금지 등을 내걸고 있어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수백곳 묶음입찰 예고…대기업 싹쓸이 불보듯 장사 안되는 강북쪽 상가만 수의계약 3년 유예
점포들 “억대 권리금 한푼 못건지고 내쫓길판” 요즘 서울의 땅밑은 전쟁 중이다. 지하 상권의 주도권을 놓고 서울시와 상가 주인들이 벌이는 한판 승부가 좀처럼 끝날 줄을 모른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자리 잡은 지하도 상가는 하루 수백만에 이르는 유동인구가 잠재고객인 황금 시장이다. 그래서 지하도 상가를 놓고 벌어지는 힘겨루기에는 숨은 복병이 있다. 호시탐탐 이 목 좋은 자리를 노려온 유통 대기업들이다. 서울시는 그 사이에서 일단 상인들과 운영 문제를 놓고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공공 공간인 지하도 상가에 대해 무작정 상인들의 기득권을 인정할 수 없으며, 경쟁 입찰로 모두에게 이용 기회를 열어놓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하도 대전, 도대체 뭐가 문제고 어떤 이권들이 그 속에 있는 걸까? “지하도 상가, 다 죽었어요” “먹고 죽으려 해도 먹을 게 없어요.” 서울 회현 지하상가에서 잡화점을 운영하는 상인 ㄱ아무개씨는 “우리도 좋아서 (이 지하상가에)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ㄱ씨의 점포 유리창에는 요즘 ‘경기 불황에 상인들 다 죽이나’라는 서울시를 향한 항의문이 붙어 있다.
상가 사람들과 서울시의 분쟁을 잘 모르는 손님들은 살벌해진 상가 풍경에 의아한 표정들이다. 이런 모습은 서울 중심가의 다른 지하도 상가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실제 상인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데는 플래카드에는 등장하지 않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한 상인은 “도심 지하상가가 물 좋았다는 것은 이제 다 옛말”이라며 “솔직히 이 상가를 빨리 뜨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러면 왜 내쫓지 말라고 구호를 붙였느냐고 묻자 “여기에 쏟아부은 게 얼만데…, 권리금 때문에 그냥 나갈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지하상가 점주들은 유동인구가 계속 줄어 장사가 예전만 못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상인은 “예전에는 지하상가에 입점해서 빌딩 지었다고 하는데 다 옛말”이라고 예전의 영화를 들려줬다. 그 시절의 증거가 바로 권리금인데 경쟁입찰제로 바뀌면 이 권리금이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점포의 양도·양수가 허용돼 목이 좋은 곳은 권리금이 1억원을 넘기도 했다. 경쟁입찰이 도입되면 권리금은 인정이 안 되고 30년 전 지하상가가 처음 생겼을 때의 보증금 1천만~2천만원만 돌려받게 될 수 있다. 백화점 재벌들에겐 매력덩어리 생각보다 장사가 잘 안된다는 이 지하상가를 유통 재벌들이 노리는 까닭은 뭘까? 도심 백화점, 쇼핑몰과 연결하면서 생기는 상승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예전보다는 줄었다고 해도 적잖은 유동인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서울시내 주요 지하상가들은 대부분 대기업 백화점들과 바로 연결된다. 회현 지하상가는 신세계백화점 본점과 붙어 있고, 강남터미널 지하도상가는 신세계 강남점, 명동 지하상가는 롯데백화점 본점, 잠실 지하상가는 롯데 잠실점, 강남역 지하상가는 최근 이전한 삼성타운과 연결된다. 대기업들은 겉으로 욕심을 드러내지 않지만 지하상가 공간을 늘 탐내왔다. 지난해 4월에는 신세계백화점이 서울시 시설관리공단에서 회현 지하상가 점포 현황 자료를 몰래 빼냈다가 드러나 상인들이 경찰에 고발하는 일도 벌어졌다. 신세계 관계자는 “지하상가 매입을 검토했지만 법적 권리관계가 복잡하고 상인들을 내보내는 것도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해 중단했었다”며 “서울시가 문제를 풀어 우리가 활용할 수 있게 된다면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말했다. 롯데 쪽도 비슷한 입장이다. 을지로입구역부터 신세계백화점에 이르는 남대문로 600m 구간은 하루 유동인구가 200만명에 이르지만 횡단보도가 전혀 없어서, 지하도 상가를 양대 백화점이 인수할 경우 시너지 효과는 상당할 전망이다. 상인들은 삼성타운과 연결된 강남역 지하상가에 대해서는 더욱 강하게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강남역 지하상가는 하루 유동인구가 40만명에 이르는 대형 상권이다. 서울시는 지난 9일 이곳 강남역 지하상가를 비롯해 한강 이남의 지하상가 5곳을 개별 점포 단위가 아니라 상가 전체로 묶어 입찰하기로 결정했다. 현재 강남역 지하상가의 점포 권리금은 점포 위치와 크기에 따라 수억원에서 10억원대에 이른다. 상가 전체를 묶어 입찰하게 되면 190개 점포의 권리금을 5억원씩만 계산해도 모두 1천억원 가량이다. 여기에 전체 상가를 모두 차지하는 프리미엄까지 얹으면 막대한 자금을 굴리는 대기업의 차지가 될 것이 뻔하다는 것이 상인들의 논지다. 지하도의 태생에서 비롯된 예고된 싸움 서울시 지하도 상가를 둘러싼 다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2년 이명박 시장 시절에도 공개경쟁 입찰을 하겠다 했지만, 상인들의 거센 반발로 5년 재계약에 합의하면서 “5년 이후의 문제는 차기 서울시장과 협의한다”고 봉합했다. 다툼이 잠시 미뤄진 것일 뿐 똑같은 분쟁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지하도 상가의 역사를 살펴보면 논란이 거듭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서울에 지하도 상가가 최초로 들어선 것은 1967년, 온 서울을 공사장처럼 파헤쳐 ‘불도저 시장’이라고 불렸던 김현옥 시장 때였다. 김 시장은 이젠 철거돼 사라진 청계고가도로, 짓자마자 무너진 와우아파트, 도심 속 흉물로 비난받은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시설 세운상가 등을 세워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개발독재 시기에 어찌됐든 일은 열심히 했다는 평도 들었다. 그가 시장 초기 가장 역점을 두었던 것이 자동차 위주의 도심 정비로, 재임 4년 동안 육교 144개와 함께, 일본 도쿄와 오사카의 대규모 지하상가를 본떠 지하상가 3곳을 건설했다. 그러다가 도심 지하상가가 다시 많이 생기게 된 것은 구자춘 시장 때였다. 당시 정부는 전쟁이 벌어질 경우 서울을 포기하는 전략에서 서울을 사수하며 전쟁을 치르는 ‘전시 수도 사수론’으로 전략을 바꿨다. 이에 따라 전쟁이 터졌을 때 방공호 기능을 갖춘 시설을 마련한 것이 바로 남산 1, 2호 터널이었고, 지하상가도 그 연장선에서 계획했다. 겉으로는 도심 보행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이면에는 공공기관들이 비상시 이곳으로 옮겨가고 비상 식량·용수의 비축시설로 활용한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그런데 당시 시 재정이 부족하다 보니 서울시는 기부채납 방식으로 민간자본에 건설을 맡겼다. 건설업체들은 상인들의 분양 보증금을 걷어 마련한 공사대금으로 지하상가를 완공했고, 이후 임대료를 받으며 20년을 운영한 뒤 서울시에 기부했다. 그래서 민간기업이 상가를 관리하는 동안엔 점포의 양수·양도가 허용되면서 권리금이 관행적으로 허용됐다. 이후 상가를 인수한 서울시는 점포의 양수·양도를 허가사항으로 만들어 운영하다 이를 금지하고 권리금과 기존 계약을 인정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웠다. 공유재산 정당 운영 당연 vs 생존권 차원 기득권 보호 서울시는 지난해 4월 “우선 계약기간이 5월31일로 끝나는 강남역 지하도 상가 35개 점포를 시작으로 계약방법을 일반 경쟁입찰로 일괄 전환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부터는 서울시 지하상가 29곳의 점포 2783곳 중 계약이 만료됐지만 계약 갱신을 요구하며 점포를 비우지 않는 1012곳의 상인을 대상으로 가게를 비우라는 명도 소송을 진행하고 있고, 지난달 31일로 계약이 종료된 960개 상가에 대해서도 명도 소송을 준비 중이다. 서울시는 지하상가는 공유재산이므로 수의계약이 아닌 공개입찰로 운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서울시 시설관리공단 관계자는 “지하도 상가는 공유재산으로 일반시민 누구라도 운영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1998년 만들어진 서울시 지하도 상가조례에도 임대차 계약 때 일반 공개경쟁 입찰이 원칙으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또한 노후한 지하도 상가를 현대식 쇼핑센터로 발전시켜 경쟁력을 갖추도록 해야 할 필요성도 크다고 한다. 서울시 김양수 도로재산팀장은 “지하상가별로 평가 작업을 거쳐 특성을 살려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맞서 상인들은 “10년 넘게 고생해 상권을 일궈놨는데 옛날 보증금만 돌려주면서 내보내고 일반 경쟁입찰로 돌리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상인들의 반발로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자 서울시는 3년 유예안을 내놨다. 서울시 도로행정담당관실 관계자는 “강남역, 강남터미널, 영등포역의 5곳 지하상가는 예정대로 공개 경쟁입찰을 하지만 강북 쪽 지하도 상가는 경기불황을 고려해 3년간 수의계약을 유예해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상인들은 여전히 강경하다. 유예 조건으로 양수·양도 금지 등을 내걸고 있어 수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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