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 정세균 · 원혜영 · 홍준표 · 박근혜 · 박희태 (왼쪽부터)
[뉴스 쏙]
박희태 ‘고전 탐구형’, 정세균 ‘문장 나열형’
홍준표 ‘직설화법형’, 원혜영 ‘책·신문 발췌형’ “50년 동안 삼겹살을 같은 불판 위에 구워 먹으면 고기가 새까맣게 타버린다. 이제 불판을 바꿀 때가 됐다.” 지난 2004년 총선 때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방송토론에서 이 한마디로 ‘떴다’.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을 정확히 끄집어낸 때문이다. 정국의 핵심을 찌르는 ‘언어의 발견’. 요즘 대중 정치인들이면 누구나 고민하는 대목이다. 단 몇 마디로 정치인의 함량과 품격이 측량되는 ‘노출 정치 시대’이기 때문이다. 방송 카메라가 밀착하는 정당의 지도부는 더욱 고민이 크다. ‘속도전’, ‘전광석화’ 등 화제성 어록을 제조해낸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고전 탐구형’이다. 대변인 시절부터 촌철살인의 논평 거리를 찾기 위해 고전을 끼고 살던 그는 요즘도 고색창연한 옛 서적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찾는다고 한다. 경제난 속에 집권 2년차를 맞는 한나라당의 각오를 다지는 의미로 그가 사용한 석전우경(石田牛耕·돌밭 같은 험난한 세상을 소처럼 갈아엎는다)이 대표적이다. 박 대표가 직접 <택리지>에서 뽑아낸 이 문구는 현재 여의도 한나라당사의 대형 펼침막으로 거듭났다. 반면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문장 나열형’에 가깝다. 그는 말씀자료를 만드는 참모들에게 격한 표현이나 단어를 피하고 정곡을 찌르는 문장을 만들 것을 주문한다고 한다. 한 참모는 “정 대표는 ‘내용이 세야지, 격한 표현이나 단어를 쓴다고 임팩트가 강해지는 게 아니다. 고사성어도 자주 써먹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박 대표와는 좀 다른 세대의 정치인인 셈이다. 정 대표 스스로 꼽는 자신의 히트 어록은 ‘야당 10년 세월에 저렇게 무능해질 줄 몰랐다’(이명박 대통령의 초기 인사 및 경제정책 실기 등을 비판하며), ‘악법과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MB악법 저지 국회 농성중 한 중앙홀 단배식에서)라고 한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차별성이 뚜렷하다. 홍 원내대표는 단정적 표현으로 의사를 명확히 한다. “입법전쟁”, “좌파척결론”, 그리고 1·19 개각에서 당이 소외되자 언급한 ‘한나라당은 셰퍼드’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방송 카메라가 없는 비공식 기자간담회에서는 비·속어도 거침없이 동원한다. 또 자진사퇴를 거부하는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을 “사내답지 못한 ×”라고 말하는 등 ‘남성성’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반면 원 원내대표는 책이나 신문 칼럼을 읽다가 정치상황에 맞는 언급이 나오면 직접 메모해 수행비서에게 넘겨 이를 회의용 말씀자료에 반영하도록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발언은 ‘야당의 전투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평가와 나름 품격과 균형을 갖추고 있다는 상반된 평가가 뒤따른다. 한나라당의 잠재적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의 ‘말씀 기법’도 차별성이 드러난다. 박 전 대표는 주로 광고 카피나 표어성의 짧고 간명한 어록을 만드는 게 특징이다. “참 나쁜 대통령”(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비판), “국민도 속고, 저도 속았다”(4·9 총선 공천에서 친박계 탈락에 대한 반발), “한나라당이 내놓은 법안이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줬다”(한나라당의 일방적 입법전쟁 비판) 등이 대표적이다. 박 전 대표의 이런 표어성 어록은 이후 측근 의원들의 해설과 언론의 분석을 통해 살이 붙고 정치적 의미가 확대되는 경로를 밟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박 전 대표에 대해 “총론적인 사항만 방어적으로 내놓는 총론적 단문단답형”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설·칼럼 활용형’으로 알려진 정 최고위원은 이른바 ‘기존 개념 재조합론자’로 분류된다. 그는 “당일 날 아침 신문에 나오는 칼럼·사설을 보고 (회의에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도 국정원 보고보다 사설과 칼럼을 열심히 읽는 게 여론 파악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설·칼럼을 애용한다. 그러나 표현은 “미국은 상처 입은 라이언킹”(오바마 당선 뒤 미국 방문 결과 결산), “우리 정치인들은 공무원을 영혼이 없는 조직이라 폄하한다. 과연 한나라당은 영혼이 살아있는지 의문을 갖는다”는 식으로 이미 익숙한 표현을 재가공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신승근 강희철 이유주현 기자 skshin@hani.co.kr
홍준표 ‘직설화법형’, 원혜영 ‘책·신문 발췌형’ “50년 동안 삼겹살을 같은 불판 위에 구워 먹으면 고기가 새까맣게 타버린다. 이제 불판을 바꿀 때가 됐다.” 지난 2004년 총선 때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은 방송토론에서 이 한마디로 ‘떴다’. 기성정치에 대한 환멸, 새 정치에 대한 열망을 정확히 끄집어낸 때문이다. 정국의 핵심을 찌르는 ‘언어의 발견’. 요즘 대중 정치인들이면 누구나 고민하는 대목이다. 단 몇 마디로 정치인의 함량과 품격이 측량되는 ‘노출 정치 시대’이기 때문이다. 방송 카메라가 밀착하는 정당의 지도부는 더욱 고민이 크다. ‘속도전’, ‘전광석화’ 등 화제성 어록을 제조해낸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는 ‘고전 탐구형’이다. 대변인 시절부터 촌철살인의 논평 거리를 찾기 위해 고전을 끼고 살던 그는 요즘도 고색창연한 옛 서적에서 정치적 메시지를 찾는다고 한다. 경제난 속에 집권 2년차를 맞는 한나라당의 각오를 다지는 의미로 그가 사용한 석전우경(石田牛耕·돌밭 같은 험난한 세상을 소처럼 갈아엎는다)이 대표적이다. 박 대표가 직접 <택리지>에서 뽑아낸 이 문구는 현재 여의도 한나라당사의 대형 펼침막으로 거듭났다. 반면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문장 나열형’에 가깝다. 그는 말씀자료를 만드는 참모들에게 격한 표현이나 단어를 피하고 정곡을 찌르는 문장을 만들 것을 주문한다고 한다. 한 참모는 “정 대표는 ‘내용이 세야지, 격한 표현이나 단어를 쓴다고 임팩트가 강해지는 게 아니다. 고사성어도 자주 써먹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박 대표와는 좀 다른 세대의 정치인인 셈이다. 정 대표 스스로 꼽는 자신의 히트 어록은 ‘야당 10년 세월에 저렇게 무능해질 줄 몰랐다’(이명박 대통령의 초기 인사 및 경제정책 실기 등을 비판하며), ‘악법과 민주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MB악법 저지 국회 농성중 한 중앙홀 단배식에서)라고 한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도 차별성이 뚜렷하다. 홍 원내대표는 단정적 표현으로 의사를 명확히 한다. “입법전쟁”, “좌파척결론”, 그리고 1·19 개각에서 당이 소외되자 언급한 ‘한나라당은 셰퍼드’ 발언 등이 대표적이다. 방송 카메라가 없는 비공식 기자간담회에서는 비·속어도 거침없이 동원한다. 또 자진사퇴를 거부하는 정연주 전 한국방송 사장을 “사내답지 못한 ×”라고 말하는 등 ‘남성성’을 강조하는 특징이 있다. 반면 원 원내대표는 책이나 신문 칼럼을 읽다가 정치상황에 맞는 언급이 나오면 직접 메모해 수행비서에게 넘겨 이를 회의용 말씀자료에 반영하도록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의 발언은 ‘야당의 전투성’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는 평가와 나름 품격과 균형을 갖추고 있다는 상반된 평가가 뒤따른다. 한나라당의 잠재적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정몽준 최고위원의 ‘말씀 기법’도 차별성이 드러난다. 박 전 대표는 주로 광고 카피나 표어성의 짧고 간명한 어록을 만드는 게 특징이다. “참 나쁜 대통령”(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 비판), “국민도 속고, 저도 속았다”(4·9 총선 공천에서 친박계 탈락에 대한 반발), “한나라당이 내놓은 법안이 국민에게 실망과 고통을 안겨줬다”(한나라당의 일방적 입법전쟁 비판) 등이 대표적이다. 박 전 대표의 이런 표어성 어록은 이후 측근 의원들의 해설과 언론의 분석을 통해 살이 붙고 정치적 의미가 확대되는 경로를 밟는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박 전 대표에 대해 “총론적인 사항만 방어적으로 내놓는 총론적 단문단답형”이라고 말했다. 반면, ‘사설·칼럼 활용형’으로 알려진 정 최고위원은 이른바 ‘기존 개념 재조합론자’로 분류된다. 그는 “당일 날 아침 신문에 나오는 칼럼·사설을 보고 (회의에서)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대통령도 국정원 보고보다 사설과 칼럼을 열심히 읽는 게 여론 파악에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사설·칼럼을 애용한다. 그러나 표현은 “미국은 상처 입은 라이언킹”(오바마 당선 뒤 미국 방문 결과 결산), “우리 정치인들은 공무원을 영혼이 없는 조직이라 폄하한다. 과연 한나라당은 영혼이 살아있는지 의문을 갖는다”는 식으로 이미 익숙한 표현을 재가공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신승근 강희철 이유주현 기자 skshin@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