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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속인 홍삼…6년근 ‘과속 스캔들’

등록 2009-03-19 19:41수정 2009-03-20 09:57

나이 속인 홍삼…6년근 ‘과속 스캔들’
나이 속인 홍삼…6년근 ‘과속 스캔들’
[뉴스 쏙]
생산량 10%뿐인데 유통량은 30% 차지
1조원대 시장 육박…수요 급증 ‘부작용’
4~5년근 눈속임 많아…인삼 수입도 급증
고가 일변도…국내 소비자만 ‘봉’ 만들어

한국 사람들이 위스키를 이렇게 즐기게 될 줄 몰랐을 외국 위스키 회사들은 어떻게 17년 전에 17년산 위스키를 그렇게 많이 만들어놨을까? 한국이 갑자기 위스키 주요 소비국이 되면서 나온 주당들의 우스갯소리이자 의문이다.

비슷한 미스터리가 최근 하나 더 늘었다. 바로 홍삼이다. 6년근 홍삼 판매가 최근 몇년 새 크게 늘면서 6년근 홍삼 유통량이 크게 늘었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인삼 중에서 6년근 홍삼의 비중은 30% 정도로 추산된다. 그러나 6년근 생산량은 많아야 전체의 10%에 불과하다. ‘나이를 속이는’ 홍삼들이 있다는 이야기다.

유례없는 불황 속에서 유독 홀로 커지는 시장이 있다. 홍삼 시장이다. 곳곳에 홍삼 매장이 들어서고, 그 바로 옆에 또다른 브랜드 홍삼 매장이 또 생기는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을 정도다. 홍삼 업체들이 최근 난립하면서 생겨난 부작용이자, 수요가 크게 늘어난 홍삼 시장의 호경기를 잘 보여주는 것이 ‘6년근의 미스터리’의 등장이다.

불황 속에도 홀로 고성장하는 홍삼시장

홍삼시장 규모
홍삼시장 규모

홍삼 제품 중 가장 널리 알려졌고 인기 높은 고급제품 6년근은 지금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인기다. 하지만 6년근 홍삼을 원활하게 수급받을 수 있는 업체는 절대강자 한국인삼공사와 농협이란 막강한 배경을 가진 농협고려인삼뿐이다. 하지만 시중에 나오는 6년근은 상당하다. 업계에선 4~5년근이 6년근으로 팔리는 것으로 추정한다.


시장이 얼마나 커졌기에 공급이 수요에 못미치는 걸까?

홍삼은 건강기능식품 전체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건강제품으로서 독보적이다. 홍삼처럼 검증된 전통의 건강식품이 없고, 기술 발달로 생산이 늘면서 빠르게 대중화된 덕분이다. 2003년 3500억원대였던 홍삼 시장은 지난해 9300억원대로 올라섰고 올해 1조원대 돌파가 확실시된다. 불과 6년 만에 3배나 커졌다. 1조원대 시장이면 온국민이 즐기는 주요 간식인 빙과·아이스크림 시장이나 피자 시장과 비슷한 규모다.

시장이 커지면서 진입 업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시장의 절대강자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정관장’으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한국인삼공사다. 2위 자리를 놓고 ‘한삼인’을 내세운 농협고려인삼, 천지양과 동원에프앤비(천지원), 풍기특산물영농조합법인(천제명) 등이 이름을 알리기 위해 치열하게 맞붙고 있다. 그러나 이들뿐만이 아니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등록된 홍삼 제조업체는 전국에 100곳을 훌쩍 넘었다. 이 중에서 자체 검사 능력을 보유한 곳은 21곳에 이른다. 가히 홍삼 전쟁이다.

한국인삼공사(정관장) 매출액 추이 · 농협고려인삼(한삼인) 매출액 추이
한국인삼공사(정관장) 매출액 추이 · 농협고려인삼(한삼인) 매출액 추이

인삼공사, 홍삼 하면 정관장 아냐?

홍삼의 대명사 정관장은 점유율만 보면 2000년대 초반 90%대에서 최근 70% 중반으로 내려갔다. 그러나 시장이 커졌기 때문일 뿐 매출액은 해마다 크게 늘었다. 경기가 안 좋았던 지난해에도 매출액이 전해보다 20%가량 늘어난 6200억원을 기록했다.

인삼공사는 독점적 지위를 지키기 위해 정관장이란 브랜드의 역사성을 강조하며 ‘홍삼은 곧 정관장’이란 인식을 굳히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인삼공사는 정관장이란 브랜드가 인삼공사보다도 역사가 더 오래된 100년 넘은 브랜드라고 강조한다. 20세기 초 수출상품 고려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가짜 고려삼이 범람하자 조선총독부 전매국이 진품이란 의미로 ‘정관장’이라는 표지를 사용한 것이 오늘날 정관장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홍삼 시장에서 인삼공사는 전통과 독점 지위를 바탕으로 프리미엄 전략을 구사한다. 경쟁업체들보다 제품 가격이 10~20% 이상 비싸다. 고급 제품인 천삼 진액은 100만원이 넘는 고가다. 천삼 진액은 전체 홍삼 중 10%뿐인 6년근 가운데에서도 0.5%만 나오는 최상급 제품이다. 인삼공사는 질 좋은 인삼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고 있어 소비자들도 비싼 값에도 믿고 구입하는 편이다. 인삼공사는 농가지원과 계약재배로 원료를 확보하고, 재배기간인 6년간 작황조사, 병충해 예방 등 철저히 품질관리 정책을 펴고 있다. 인삼공사가 지난해 사들인 6년근 인삼은 6000톤이었는데, 이는 6년근 인삼 전체의 80%에 해당한다.

후발 업체들, 우리도 있다

후발 업체들은 어떻게든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 현재 2위는 농협중앙회의 자회사인 농협고려인삼이다. 농협은 2002년 브랜드 ‘한삼인’을 만들어 홍삼 시장에 뛰어들었다. 농협 브랜드를 내세워 단기간에 2위 자리를 차지했는데, 안정적이지는 않다. 여기에 2007년 하반기 사업을 시작한 신생기업 천지양도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이밖에 ‘천지원’ 브랜드의 동원에프앤비, ‘천제명’의 풍기특산물영농조합법인 등이 2위를 놓고 다투고 있다. 씨제이와 대상 등의 대기업들은 홍삼 음료를 중심으로 시장에 진출하고 있고, 여러 지역 인삼조합 등 100여 생산업체가 시장의 20~30%를 분점하고 있다.

1위 인삼공사가 너무 강하다 보니 후발 업체들은 따라하기와 차별하기로 돌파를 노린다. 따라하기 전략을 펴는 곳으로 한삼인을 들 수 있다. 한삼인의 지난해 매출액은 370여억원. 정관장의 15분의 1 정도다. 한삼인은 정관장을 벤치마킹하는 듯한 전략을 골랐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4년근 홍삼을 팔았지만 이제는 6년근 제품만 생산한다. 가격이 다소 비싸더라도 정관장과 맞붙어 승부를 보겠다는 것이다. 원료 수급 방식도 지역인삼조합과 양자계약을 맺어오던 것에서 올해부터 인삼공사처럼 직접 농민과 계약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을 검토중이다.

원료 수급이 쉬운 농협과 상황이 다른 후발 업체들은 당연히 ‘차별하기’ 전략을 편다. 천지양은 6년근도 함께 팔고 있지만 주력 상품으로는 4년근을 민다. 4년근이 6년근과 견줘 효능 면에서 손색이 없다고 강조한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4년근으로 대중성을 노린 전략은 어느 정도 성공한 편이다. 천지양은 시장 진출 첫해인 지난해 150억원 매출을 올렸고, 올해는 두 배 늘어난 300억원을 목표로 잡았다. 제품은 정관장과 완전히 차별화를 추구하지만 유통은 완전한 정관장 따라가기다. 이 업체는 기존 정관장 대리점 바로 옆에 가맹점을 내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6년근이냐 4년근이냐

후발 업체들은 시장을 주도하는 정관장의 6년근에 맞서기 위해 4년근이 영양성분에서 6년근과 큰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4년근이나 6년근이나 인삼 약효의 핵심 성분인 사포닌의 차이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삼공사 쪽은 “홍삼 중 먹을 수 있는 가장 오랜 수령인 6년근이 효능이 좋다는 것은 우리의 전통이 증명한다”며 논쟁 자체가 성립 안 된다는 태도다.

천지양 등 후발 업체들이 4년근 전략을 고른 것은 원료 수급의 어려움 때문이기도 하다. 천지양 신일섭 사업본부장은 “6년근이 4년근보다 효능이 더 좋다는 근거가 불명확한데다, 6년근 생산량이 많지 않고 값이 지나치게 비싸 대중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효능 면에서도 뒤처지지 않는 4년근 제품과 합리적인 가격대로 승부한 결과 영업 성과가 좋게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관장과 한삼인은 6년근에 주력하고, 천지양과 천지인 등은 4년근에 총력을 쏟고 있다.

홍삼 시장에서 최고 대접을 받는 6년근은 생산량을 크게 늘리기가 어렵다. 4년근은 충남 금산, 경북 풍기, 전북 진안 등 전국 각지에서 고루 재배되는 편이다. 반면 6년근은 주로 경기 북부 포천과 연천, 김포, 인천 강화, 강원 홍천 등지에서 재배된다. 여기에 재배 기간이 더 길고 경작이 어려워 6년근까지 경작할 경우 정상적으로 수확되는 비율이 70~80%로 줄어든다. 6년근은 대부분 인삼공사와 농협에 계약재배 방식으로 수매된다. 농민들도 재배가 쉽고 수익도 내기 좋은 4년근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브랜드 가치와 인기가 높다 보니 6년근의 수요는 늘 넘친다. ‘6년근 홍삼의 미스터리’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안방 소비자만 봉? 국제 시장 점유율은 바닥 수준

시장이 커지면서 인삼 종주국임에도 인삼 수입이 늘고 있다. 1993년 2.1톤에 불과했던 수입량이 2005년 297톤, 2006년 379톤, 2007년 263톤으로 늘었다. 중국과 미국산 인삼이 주로 수입되는데, 중국삼은 밀수도 크게 늘어난 실정이다. 중국삼의 밀수 적발물량은 2004년 83톤에서 2005년 543톤으로 폭증했고, 2007년에는 316톤을 기록했다. 수입삼과 밀수 인삼은 저가 한약재나 홍삼 음료에 주로 들어가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 전문가는 “약재시장에서 원산지 표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2만~3만원짜리 저가 홍삼은 수입산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외국산 인삼이 효능 면에선 신뢰성이 떨어지지만 자유무역협정이 맺어져 수입물량이 늘어날 경우 가격 경쟁력이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현재 수입산은 국내산의 절반 가격 또는 60~70% 선에서 팔린다. 우리 인삼이 국제 시장에선 이미 경쟁력을 상당 부분 잃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 경쟁만 치열하다 보니 외국에선 입지가 약해졌다는 것이다.

중소 홍삼업체의 한 임원은 “국내 시장에서 홍삼제품은 분명 지나치게 비싼 수준”이라며 업체들이 내수 시장에서 고가 전략만 펼친다고 지적했다. 그는 “70년대까지 세계 시장에서 50%를 점유했던 한국산 고려인삼의 점유율이 최근 2%까지 떨어진 것은 외국산 인삼을 우습게 생각하고 저렴한 상품을 만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한 탓”이라고 시장 주도 업체들을 공격했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그래픽 홍종길 기자 jongg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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