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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가 웃었다, 형님이 워낙 못해서…

등록 2009-05-14 22:29수정 2009-05-15 08:37

‘형님’ 강만수 vs ‘아우’ 윤증현
‘형님’ 강만수 vs ‘아우’ 윤증현
[뉴스 쏙] ‘형님’ 강만수 vs ‘아우’ 윤증현
형님 ‘돈질’ 덕에 아우 ‘입질’로 환율 잡아
금융계 “강만수보다 윤증현이 낫다” 평가

출생지·대학·경제수장까지 ‘빼닮은 이력’
말실수 잦고 ‘친재벌 친부자’ 이념도 닮아

삼겹살값 몰랐다가 호되게 혼이 난 두 사람이 있다. 이명박 정부 경제팀 1기와 2기를 책임지는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과 윤증현 현 장관이다. 이른바 ‘엠비(MB) 품목’ 52개 중 6번째인 돼지고기, 그중에서도 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삼겹살값을 몰랐던 이 ‘삼겹살 브러더스’는 형제처럼 닮았다. 두 사람 모두 경남 출신에 서울 법대 동기동창, 행정고시 출신 관료로 평생을 살았다. 그리고 재정부 장관 자리를 앞뒤로 주고받았다.

이력은 비슷해도 다른 점이 많다. 삼겹살값 질문에 했던 대답을 보면 둘의 차이가 드러난다. “삼겹살을 잘 안 먹어서 가격을 잘 알지 못한다.” 순박하지만 무뚝뚝한 답변이 형님 강만수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면, 아우 윤증현은 솔직하면서도 구렁이 담 넘듯 눙치는 솜씨가 있다. “물으실 줄 알았으면 갔다 올 걸 그랬다.”

윤 장관이 장관으로 온다는 소식에 기획재정부에선 “늑대 대신 호랑이가 온다”는 말이 나왔는데, 삼겹살 질문을 피하는 순발력을 보면 여우 같다는 평도 나온다. 윤 장관이 여우건 호랑이건 그가 자리잡자 전임 강만수 장관을 그토록 괴롭혔던 환율은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고, 금융권은 한결같이 “강만수보다 윤증현이 낫다”고 입을 모은다. 단, 한마디가 꼭 따라붙는다. “윤증현이 잘해서가 아니라 강만수가 워낙 못했기 때문”이라고.

비슷하면서 다른 두 사람, 그러면 경제 정책과 운영 스타일은 어떻게 다를까? 취임 석달을 지나 초반 적응기를 마친 윤 장관과 전임자인 강 전 장관에 대한 경제계의 솔직한 평가를 들어봤다. 한 경제전문가는 도박판에 비유해 간단하게 정리했다. 강 전 장관은 포커판에서 가장 손쉬운 상대인 ‘호구’였으며, 윤 장관은 베팅 이전에 심리전을 구사하는 ‘꾼’이라는 것이다.

아우는 형님 덕

윤 장관이 강 전 장관보다 낫다는 평을 받는 것은 무엇보다도 환율 덕분이다. 지난해부터 올해 3월 초순까지 환율이 급등하면서 한국 경제는 지옥 입구까지 갔다 오는 오싹한 경험을 했다. 윤 장관 취임 직후에도 3월2일 원-달러 환율이 1570원까지 올랐고, 3월6일엔 장중 고점이 1597원에 이르기도 했다. 15% 가까이 급등한 것이다. 이후 환율은 극적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외환당국의 시장 개입이 먹혀들어갔던 것이다. 이 지점에서 두 장관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윤 장관은 “환율이 한 방향으로만 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에두른 표현으로 강한 메시지를 던졌고, 허경욱 재정부 1차관은 “외환보유액 2천억달러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동시에 1600원 근방에서 3차례 집중적으로 달러를 내다 팔며 시장개입을 시도했다. 조용했지만 시장은 당국의 신호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한 외환시장 참가자는 “당시 시장에선 외환당국이 1600원을 사수하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고 받아들였다”고 전했다. 결국 외환시장에서 소리 없는 전투가 치러진 뒤인 3월9일부터 환율은 하락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때를 포함해 올해 들어 외환시장 개입에 들어간 돈은 20억달러 정도다. 강 전 장관 때 시장 개입에 쓴 돈은 200억달러 이상. 형님이 10배나 되는 거액을 쓰고도 환율을 잡지 못했지만 아우는 그 10분의 1로 성공해 비교우위에 설 수 있었다.

더욱 비교되는 건 시장개입 방식이다. 대표적인 것이 강 장관 시절의 이른바 ‘도시락 폭탄’ 조처다. 지난해 7월9일, 외환당국은 외환딜러 등이 다들 점심 먹으러 간 사이에 맞춰 한꺼번에 60억달러가 넘는 매도 폭탄을 때렸다. 외환시장의 관행과 통념을 넘어선 극히 이례적인 초강수였다. 당일 1050원 하던 환율이 1000원 아래로 내려가긴 했지만, 시장에선 도저히 당국의 정책을 못 믿겠다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무모하다는 말을 들은 이런 개입 이후 한국 정부에 대한 시장의 태도는 예측불가, 신용불가로 굳어졌다. 이후 환율은 다시 올라 7월 말 1010원을 넘었고, 9월 1100원대, 10월 초 1400원에 육박한 뒤 11월 종가 기준 1515원으로 급등하며 도시락 폭탄을 비웃었다.

강-판돈만 믿는 호구, 윤-포커페이스로 운까지 따른 고수

강 장관이 워낙 원성을 산 탓에 시장 민심은 윤 장관에게 쉽게 기댈 수 있는 측면이 있다. 여기에 강 장관이 최악의 상황에서 지휘권을 윤 장관에게 물려주는 바람에 윤 장관이 오히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이 확실한 방법을 고르게 된 측면도 있다.

강 장관이 도시락 폭탄으로 달러를 날려버린 뒤 윤 장관에게 넘겨준 돈주머니에는 2천억달러(1월 말 외환보유액 2017억달러)가 들어 있었다. 달러 빚이 1900억달러(유동채 1939억6천만달러)를 넘어 아슬아슬한 금액이었다. 물량공세 방식으로 머니게임을 할 수 없었던 윤 장관은 좀더 세밀한 구두개입 등의 방식으로 게임을 벌여야만 했다. 다행히 국제금융시장 경색이 상당히 풀리면서 운도 따라줬다. ‘환율주권론자’ 형님 덕분에 아우는 불가피하게 ‘시장존중론자’로 칭송받을 수 있었다.

형님이 도박판 위에 거액을 쌓아두고 패까지 보여줘 가며 돈을 잃어준 덕에, 아우는 ‘돈질’보다는 필사적인 포커페이스로 운 좋게 게임에서 우위에 설 수 있었던 것이다. 한 경제전문가는 두 사람의 외환시장 정책을 이렇게 비교한다.

“강 장관은 ‘내 밑천이 이렇게 많은데 한번 해볼 테냐’는 식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외환보유고(2008년 초 외환보유액 2600억달러)는 적지는 않아도 세계 외환거래 규모를 놓고 보면 그리 큰돈도 아니었다. 외국 환투기 세력이 덤벼드는 바람에 환율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결국 돈만 많은 ‘호구’였던 것이다.”

그럼 윤 장관은? “강 장관처럼 절대 직접 안 나선다. 자기가 도박판에 끼지 않고 대신 은행권을 내세웠다. 자본확충펀드를 만들어 대외신인도 운운하며 은행권의 자본을 늘렸고 저축은행 부실을 일단 떠안았다. 금융부실을 우려하던 외국의 비판적 시각이 사라졌고, 은행들이 해외 채권 발행에 성공하면서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되던 은행권 위기론도 사그라들어 외환시장이 평온을 찾았다.” 강 전 장관이 판돈만 믿고 목소리를 키웠다면 윤 장관은 판돈이 나올 저수지를 보여줘 상대방의 기를 죽인, 노회한 선수였다는 이야기다.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두 사람의 관계는 어떨까? 윤 장관은 사석에서 강 전 장관과의 관계를 ‘관포지교’라고 표현했을 정도다. 윤 장관은 1946년 9월 경남 마산 출생이고, 강 전 장관은 150리 정도 떨어진 경남 합천에서 1945년 6월 태어났다. 서울 법대 65학번 동기인 두 사람은 40년 지기다. 강 전 장관이 행시8회로 윤 장관보다 2년 먼저 합격했고, 관료의 길을 함께 걸었다.

두 사람은 지금도 외환위기 때의 구실 때문에 당시 위기의 주범이란 비판을 받는다. 당시 강 전 장관은 재정경제부 차관, 윤 장관은 금융정책실장이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두 사람의 행보는 완전히 갈린다. 강 전 장관은 옷을 벗고 야인으로 ‘잃어버린 10년’을 살았다. 반면 윤 장관은 세무대학 학장과 아시아개발은행(ADB) 이사를 거쳐 2004년 금융감독위원장으로 영전했다. 아우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잃어버린 10년 동안’ 승승장구한 반면, 형님은 10년여의 와신상담을 거친 뒤에 이명박 대통령 덕에 부활할 수 있었다.

같은 경제관료지만 둘의 전공은 다르다. 금융정책실장을 역임한 윤 장관은 ‘금융통’이고, 강 장관은 세제실장을 지낸 ‘세제통’이다. 두 사람의 금융시장 정책 차이를 전공의 차이로 풀이하는 시각도 있다. 한 금융계 인사는 “강 장관이 금융을 잘 몰랐던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금융시장에서 강 장관이 금융을 잘 모른다고 여기고 무시하고 말을 제대로 듣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윤 장관의 말은 금융시장에서 분명 잘 먹혀들어간 편이다. 옛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출신들을 말하는 ‘모피아’가 부활한 것이다. 정책라인이 윤진식 청와대 경제수석, 진동수 금융위원장 등 윤 장관의 관료 후배들로 채워졌다. 금융권에도 모피아로 꼽히는 신동규 은행연합회장, 지난 2월 취임한 김동수 수출입은행장, 중소기업은행 윤용로 행장을 비롯해, 이철휘 캠코 사장, 진병화 기술신용보증기금 이사장, 박대동 예금보험공사 사장 등이 취임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재정부 관료 출신들이 금융시장에 속속 자리잡으면서 당국의 말발이 더욱 사는 면이 있다”고 말했다.

결과는 달라도 이념은 판박이-집요함엔 난형난제

그래도 두 사람은 많이 닮았다. 우선 둘 다 말실수가 잦은 편이다. 아직도 인터넷에는 강 전 장관의 ‘어록’이 떠돈다. “양극화는 시대의 트렌드다” “서민에게 대못 박았다는데 그럼 고소득층에 대못 박는 사항은 괜찮나?” 등이다. 윤 장관도 형님만큼은 아니지만 실수성 발언을 종종 해왔다. 3월엔 “국회가 깽판이라 세제 혜택을 못 주고 있다”고 했다가 국회의 거센 반발을 샀고, 최근 추진중인 영리병원 도입에 대한 반발이 일자 “비싼 병원에는 안 가면 되는 것 아니냐” 고 했다가 비판을 받았다.

관료 사회에서 두 사람에게 공히 내리는 가장 닮은 점은 ‘집요함’이다. 특히 부유층과 기업을 위한 정책에 특히 집요함이 일치한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50평대 아파트를 가진 강 전 장관은 공직에서 물러나 10여년 야인으로 살던 시절 종부세에 크게 데었다고 한다. 종부세를 내려고 2천만원을 은행에서 대출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10년 동안 소득은 없는데 종부세만 냈다”고 말했다. 종부세에 대한 오랜 반감으로 그는 온갖 비판에도 종부세를 집요하게 무너뜨렸다.

윤 장관도 집요함에선 강 전 장관에게 결코 뒤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영리병원 도입과 금산분리 폐지에 대한 신념에 가까운 고수다. 참여정부 금감위원장 시절부터 친기업적, 친삼성이란 말을 들어가면서도 ‘금산분리 완화’를 주장해왔고, 이제 이명박 정부 들어 그의 지론이 빛을 볼 참이다. 논란이 많은 영리병원 도입 문제도 서비스산업 활성화를 명분으로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글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사진 강재훈·김경호 기자 k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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