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상의 킹메이커 ‘왕의 형제들’
“형에게 감사합니다.”
이세돌(27) 9단은 지난달 비씨(BC)카드 월드바둑 챔피언십 우승 소감에서 고마운 사람을 묻자, 형을 가장 먼저 지목했다. 어렸을 때부터 서울 객지생활의 버팀목이었고, 바둑 공부의 스승격인 형 이상훈(35) 7단에 대한 마음의 표시다. 이창호(36) 9단은 중국 베이징에 사는 동생 이영호(35)씨가 매니저 구실을 한다. 중국 출장 때는 그림자 수행을 하면서 형이 편안하게 대국할 수 있도록 모든 준비를 해준다. ‘불사조’ 조치훈(54) 9단은 형 조상연(69) 7단이 없었다면 일본 바둑을 호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상연 7단은 6살 나이의 조치훈을 위해 일본행을 결심한 뒤 평생을 동생 뒷바라지에 바쳤다. 바둑계의 유난한 형제간 우애는 거목의 산실이다.
■ 승부욕 강한 동생에 애먹은 형 전남 신안의 비금도에서 태어난 이세돌 가족은 5남매. 아마 5단쯤 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맏형 이상훈은 15살에 프로가 됐고, 막내 이세돌은 아홉 살 때 형의 손에 이끌려 서울로 올라온다. 권갑용 도장에서 함께 기숙하면서 프로인 형은 동생을 “끼고 살면서” 가르쳤다. 형 이상훈은 “승부욕이 워낙 강해 바둑에 지면 투정을 많이 부렸다. 그 때마다 속 많이 상했다”고 회상한다. 지난해 6월 이세돌의 휴직선언 때는 형도 충격이었다. 이상훈 7단은 “어떻게 하든 휴직을 막아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듣지 않아 절망스러웠다”고 했다. 그래도 동생은 영원한 동생이다. 올해 초 복귀해 비씨카드배에서 우승하고, 아시아경기대회 대표선수로 확정되는 등 간판기사로 제자리를 찾자 섭섭함은 눈 녹듯 사라졌다. 6일 시작되는 2010 케이비(KB) 한국 바둑리그에서는 신안천일염 감독(이상훈)과 팀원(이세돌)으로 막강 ‘형제 파워’를 과시할 예정이다.
■ ‘형님 먼저, 아우 먼저’ 이창호 9단이 중국에 모습을 보이면 바짝 달라붙어 이 9단을 수행하는 이가 있다. 연년생 동생인 이영호씨가 주인공이다. 동생은 1998년부터 중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형의 스케줄을 책임진다. 중국어 통역은 물론 숙식, 운전사 역할까지 전담한다. 중국에 가면 식사도 거의 못하고 아파서 성적을 내지 못냈던 형이 동생의 열성에 달라졌다. 성적도 나아졌고 중국리그 진출도 꺼리지 않는다. 올해 농심신라면배에서 최종주자로 나서 중국의 구리, 창하오 등을 물리치고 우승컵을 안긴 배경에도 동생의 든든한 후원이 있다. 실제 이창호 9단은 주변 사람들에게 “동생이 있어 중국에서의 대국이 편안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동생은 형의 홈페이지(www.leechangho.com)에 글도 올리고, 2005년 낸 <나의 형 이창호>라는 책에서는 둘도 없는 우애를 과시했다.
■ 조치훈의 형님 사랑 1962년 여섯 살의 어린 나이에 일본 유학길에 오르기 위해 비행기 트랩에 올랐던 조치훈 9단의 뒤에는 15살 위의 형 조상연 7단이 있다. 한국에서 기사 생활을 포기한 채 “명인을 따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다”던 어린 조치훈의 평생 보호자 구실을 했다. 외롭고 고독한 일본 생활에서 오로지 바둑판만 마주한 동생을 위해 때로는 엄한 아버지, 때로는 자상한 어머니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1968년 일본 최연소 입단 기록(11살), 81년 최연소 9단(24살), 83년 일본 3대 기전(기성, 명인, 본인방) 첫 동시 석권, 71개의 타이틀 획득 등의 대기록 뒤에는 형이 있다. 바둑인들은 둘의 관계를 두고, “조치훈은 형이 아무리 잘못해도 ‘예스’라고 답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형에게 절대적인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고 설명한다. 50년 가까이 일본에 살면서도 귀화하지 않고 국적을 지킨 조치훈은 한 수 한 수를 목숨을 걸고 두는 ‘투혼’의 승부사다. 그 고집스러움은 형님 사랑에서도 그대로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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