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정 한국기원 여자기사회장이 육군 65보병사단 병사들을 상대로 바둑 강의를 하고 있다. 한국기원 제공
여자 프로기사들 10명 부대 16곳서 바둑교실 군인들 인기 동아리로
김효정 여자기사회장 “육해공 바둑대항 어때요?”
김효정 여자기사회장 “육해공 바둑대항 어때요?”
‘여자가 군대에서 바둑을?’
김효정(30·2단), 이다혜(27·4단), 윤지희(23·3단) 프로는 군에서 바둑을 가르치는 유명인사다. 2년 넘게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에게 “군대에서 바둑을 가르친다”고 말하면 “여자가 그런 것도 해요?”라는 우문이 돌아온다. 편견은 뿌리 깊다. 하지만 변화는 보이고 있다. 이들의 ‘무모한 도전’이 결실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기원 여자기사회(회장 김효정)가 펼치고 있는 군부대 바둑보급이 인기를 얻고 있다. 2009년 3월 육군 65보병사단에 처음으로 병영바둑교실을 연 뒤 입소문을 타고 전군에 소문이 퍼졌다.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던 군부대들은 바둑교실을 열어달라는 요청을 쏟아낸다. 이미 해군작전사령부, 해병대 제1사단, 공군작전사령부 등 육·해·공을 넘나들며 16개 부대를 ‘접수’했다. 바둑교실에 참여하는 여자 기사들도 10명에 달한다. 최근에는 육군사관학교에서도 바둑동아리가 생겨 김효정 2단이 매주 한 번씩 육사생도를 만난다.
군대와 바둑은 궁합이 잘 맞는다. 장병들은 바둑을 통해 인내심과 전술적 마인드를 기른다. 또 바둑을 ‘수담’(손으로 나누는 대화)이라고 일컫듯이 경직된 병영생활에 잔잔한 소통의 기회를 준다. 이 때문에 군 바둑교실은 부대 안에서 가장 활발한 동아리로 자리잡았다. 65사단 포병연대 작전과장 정현성 소령은 “사병 2000명 가운데 200명 이상이 바둑교실에 참여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며 “장병 개개인의 인내심과 집중력을 길러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부대당 평균 수강 인원을 200명 정도로 잡아도 매주 3000명이 넘는 장병이 바둑을 배우고 즐기는 셈이다.
처음 시작할 땐 두려움이 컸지만, 지금은 더 큰 포부를 품게 됐다. 김효정 2단은 “장병 모두를 바둑 동호인으로 만들게 하고 싶다”고 욕심을 낸다. “예전에 제 주변에도 군대에 가서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나 선후배들이 많았어요. 실제 현장에 가서 가르치다 보면 군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병사들이 바둑을 두면서 사람들과 친숙해지고 소통하는 것을 보면 뿌듯해요. 군대가 엄연한 계급사회지만 바둑은 이를 뛰어넘어 소통의 장을 마련해 주는 중요한 도구인 셈이죠.”
바둑을 보급하겠다는 ‘열정’ 하나로 걸어온 길이지만 이제는 장병들을 만나는 주말이 기다려진다. 이다혜 4단은 “피엑스(PX)에서 군것질을 하고, 사병식당에서 밥도 같이 먹으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는 것이 좋다”며 “얼마 전엔 바둑대회에서 우승해 포상휴가를 다녀온 장병이 없는 월급을 털어 소시지도 사주더라”며 웃었다. 한국기원 예산과 인력만으로 바둑교실을 운영하다 보니 보급 확산에 한계를 느끼기도 한다. 윤지희 3단은 “지금은 정부의 관심이 떨어지지만 전국의 군부대들이 바둑교실을 운영하면 정부에서도 예산지원을 해줄 수 있을 겁니다. 기업체들도 후원에 동참할 거고요”라며 희망을 말했다.
김효정 2단은 “언젠가 육·해·공 대항전을 만들어 전국의 장병들이 바둑대결을 벌이는” 게 꿈. 이다혜 4단은 “백령도의 해병대에도 보급하고 싶다”며 더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고 있다. 이 같은 마음이 모여 군 바둑교실이라는 초석이 놓였다. 앞으로 그 위에 더 높은 탑이 쌓여갈 것 같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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