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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바둑

기사들의 말말말…올 바둑계 축약판이네

등록 2011-12-21 20:50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국내용 꼬리표 뗀 원성진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 무관의 돌부처도 허허
“꿈속을 헤매는것 같아” 쿵제를 눕힌 나현 초단

수담(手談), 그러니까 손으로 대화를 나누는 바둑인들은 평소 말이 없다. 그래서 가끔 던지는 한마디에는 진솔한 힘이 있다. 둔탁해도 친근하게 느껴지고, 어눌해도 곰곰이 되새기게 된다. 말수 적은 바둑인들의 ‘한마디’를 통해 2011 바둑계를 되돌아본다.

■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 날아오를 것 같다” ‘예비 아빠’ 이창호(36) 9단의 얼굴엔 요즘 환한 꽃이 피었다. 부인 이도윤(25)씨는 지금 임신 6개월째. 이창호는 최근 펴낸 자전 에세이 <부득탐승-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에서 “아내가 아이를 가졌다. 하늘로 날아오를 것 같은 기분”이라고 밝혔다. 올 초 국수전에서 최철한 9단에게 져 무관으로 전락했지만 새 생명을 잉태한 지금 왕좌 복귀를 노린다. 현재 올레 케이티(KT)배 결승에 올라 이세돌(28) 9단과 패권을 놓고 다투고 있다. 5번기로 치러지는 결승에서 21일 현재 이세돌의 2-1 우세.

■ “비씨카드배가 없었다면…” 2009년 5월 돌연 휴직을 하고 바둑돌을 접은 이세돌은 2010년 4월 제2회 비씨카드배 월드바둑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화려하게 복귀 신고를 했다. 올해 4월에도 이세돌은 결승에서 중국의 구리(28) 9단을 꺾고 대회 2연패를 이뤘다. 특히 올해 대회 결승은 소문만 무성했던 이세돌-구리의 ‘세기의 10번기’ 이벤트가 무산된 뒤 첫 맞대결이어서 이목이 집중됐다. 이세돌은 ‘투혼’을 발휘해 구리를 3-2로 이겼고, 한국기원은 ‘2011 한국 바둑 최고의 뉴스’로 이세돌의 우승을 꼽았다. 비씨카드와 인연이 깊어진 이세돌은 우승 인터뷰 때 “비씨카드배가 없었다면 복귀 뒤 성공적으로 일어서지 못했을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13년의 기다림 끝에 챔피언을 ‘먹는’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엄마’였다. 국내 톱 기사임에도 ‘국내용’ 꼬리표가 붙어 속상했던 원성진(26) 9단이 12월 7일 마침내 세계 기전 타이틀을 따냈다. 그것도 ‘별들의 전쟁’이라 불리는 삼성화재배 정상에 우뚝 섰다. 중국 최강 기사 구리를 꺾고 오른 자리이기에 기쁨은 두 배였다. 1승1패로 팽팽하게 맞선 마지막 3국에서 원성진은 불리한 형세로 구리한테 끌려갔지만, 막판 기적의 역전승을 거뒀다. 중국 상하이의 대국장을 빠져나온 그는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엄마, 나 챔피언 먹었다”고 기쁨을 전했다. 1985년생 동갑인 박영훈·최철한과 함께 ‘송아지(소띠) 삼총사’로 불렸지만 홀로 뒤처졌던 아픔도 털었다.

■ “어릴 땐 애들 발로 차고 놀았어요. 7월 여덟 명의 ‘아저씨’가 소녀 앞에서 눈물을 훔쳤다. 그 가운데 여섯 명은 입신(9단)이었다. ‘소녀 검객’ ‘입신 킬러’ ‘바둑 천재’…. 열네살 소녀에게 이렇게 많은 수식어가 붙는 경우도 드물다. 바로 최정(14·충암중) 초단이다. 최정은 45살 이상 남자 시니어 대표 12명과 여자 대표 12명이 연승전을 펼치는 지지옥션배 여자 선수로 역대 대회 최다인 8연승을 거뒀다. 속기의 달인 서능욱(9단), ‘장비’ 장수영(9단), 백전노장 서봉수(9단), 스승 오규철(9단) 등이 희생자다. 8연승은 1997년 진로배 세계 연승바둑대회에서 서봉수 9단이 일궈낸 세계 최장 9연승에 1승이 모자란 대기록. 대체 어디에서 힘이 나오느냐는 질문에 “어릴 땐 애들 발로 차고 짓궂게 놀았다”고 말하는 ‘당찬’ 소녀다.

■ “한살이라도 어린 내가…” 박정환(18) 9단이 8월 고수들이 득실대는 24회 후지쓰배 세계대회에서 절정의 감각으로 패권을 차지했다. 18살7개월에 일궈낸 쾌거였다. 결승전까지 휴식일 없이 매일 대국을 치르는 ‘지옥의 레이스’에서 수줍음 많은 10대는 엄청난 내공으로 백전노장을 제압했다. 우승 비결을 묻자 그는 “한 살이라도 어린 내가 유리하지 않겠느냐”며 웃어 보였다. 13살에 입단해 한국 바둑의 미래를 짊어질 천재 소년으로 주목받아온 박정환. 신동 이미지를 벗고 이제는 당대의 간판으로 성장했다.


■ “꿈속을 헤매는 것 같다” 16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8강전이 열린 10월5일 대전 삼성화재 유성연수원. 중국 기자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우르르 대국장으로 향했다. 중국의 자존심 쿵제(29) 9단이 8강에서 신출내기 나현(16) 초단에게 져 탈락했다. 쿵제는 잠시 고개를 숙이더니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떴다. 복기를 충실하게 하는 것으로 소문난 쿵제가 이날은 단 한 수의 복기도 하지 않았다. 그만큼 나현의 승리는 중국 쪽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대국 뒤 나현은 “아직은 꿈속을 헤매는 것 같다”고 했다. 결승 진출엔 실패했지만 나현의 4강 진출은 바둑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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