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자이언츠 이대호가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KBO리그 올스타전에서 은퇴투어 행사를 진행하면서 팬들에게 큰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잠실야구장에서 3년 만에 열린 KBO리그 ‘대면’ 올스타전은 볼거리가 풍부했다. 올스타 선수들은 각종 아이디어로 팬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김태군, 이승현, 김지찬(이상 삼성 라이온즈) 등은 자신들의 별명에 따라 각각 임금님, 저승사자, 어린이 복장을 했다. 황대인(KIA 타이거즈)은 방귀대장 뿡뿡이처럼 분장했고, 닉 마티니(NC 다이노스)는 아예 자신의 이름과 같은 마티니 칵테일을 한잔 하고 타석에 들어섰다. 이정후(키움 히어로즈)는 롤모델인 페르난데스 타티스 주니어(샌디에이고 파드리스)처럼 ‘올스타전 한정’ 레게머리를 하고 나타났다. 선수들의 재기발랄한 모습에 호응하며 잠실야구장에 모인 2만3750명 팬은 야구 축제를 마음껏 즐겼다.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KBO리그 올스타전에서 선수들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연출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저승사자 복장을 한 이승현, 곤룡포를 입은 김태군, 유치원 복장을 한 김지찬(이상 삼성 라이온즈), 수퍼맨 옷을 입은 닉 마티니(NC 다이노스), 레게머리를 한 이정후(키움 히어로즈), 방귀대장 뿡뿡이 분장을 한 황대인(KIA 타이거즈). 연합뉴스
이날 올스타전에서는 특히 선수들이 관중을 향해 큰절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김광현(SSG 랜더스)은 3회말이 끝난 뒤 기아팬들이 소크라테스 브리토의 응원가를 부르자 그라운드로 나와 큰절을 했다. 소크라테스는 지난 2일 경기에서 김광현이 던진 공에 얼굴을 맞고 코뼈가 골절돼 올스타전 출전이 불발된 터였다. 김광현의 큰절은 소크라테스와 기아팬을 향한 진심 어린 사과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김광현 또한 몸에맞는공 이후 스트레스가 심했던지 대상포진을 앓았고 올스타전 또한 출전이 불투명했으나 팬들을 위해 출전을 강행했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또한 클리닝타임 때 큰절을 했다. 이대호는 올 시즌이 끝나면 은퇴하는 터라 이번이 선수로는 마지막 올스타전 출장이었다. 공식 은퇴투어 대상자이기 때문에 이번 올스타전이 이대호의 은퇴투어 첫 시작이나 다름없었다. 평소 듬직한 모습만 보여줬던 ‘조선의 4번 타자’는 눈물을 흘리며 팬들에게 이별의 시작을 알렸다. “더 좋은 사람이 되겠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전 구단 선수들이 모인 가운데 치러진 이대호의 은퇴투어는 동료들에게 또 다른 마음의 불을 지폈다. 오늘의 땀이 내일의 명예로 돌아온다는 사실이 충분히 각인됐을 것이다.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 16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KBO리그 올스타전 식전 행사 때 KBO 레전드 40인 중 TOP 4에 선정된 아버지 이종범 엘지 2군 감독에게 꽃다발을 전한 뒤 포옹하고 있다. 이정후는 이날 ‘종범 주니어’로 적힌 유니폼을 입고 출전했다. 연합뉴스
올해 올스타전에서는 프로야구 출범 40주년을 맞아 전문가와 팬들의 투표로 선정된 레전드 40인 중 톱4(선동열, 최동원, 이종범, 이승엽)도 발표됐다. 그리고, 10개 구단 팬들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 끝에 사직야구장 앞에 자리 잡은 고 최동원의 동상이 클로즈업되고 이후 선동열 전 기아 감독이 시구를 해 축제의 시작을 알렸다. 현역 시절 포지션대로 유격수 이종범(LG 2군 감독), 1루수 이승엽(KBO 총재 고문)이 공을 차례대로 이어받는 모습은 꽤 인상적이었다.
올 시즌 최고 스타플레이어로 거듭나고 있는 이정후가 자신의 유니폼에 ‘종범 주니어(Jong Beom Jr.)’로 표기한 것도 나름 상징적이었다. 아버지와 아들의 포옹을 보면서 세대별로 누군가는 ‘이종범의 아들’을, 또 누군가는 ‘이정후의 아버지’를 생각했을 터. 야구는 추억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면서 또 다른 세대로 이어지는데 이들 부자는 연결고리가 되기 충분했다.
마흔살, 불혹의 나이에 시끌벅적하게 치러진 프로야구 축제는 사과의 장이 됐고, 이별의 장이 됐다. 그리고, 세대 연결의 장도 됐다. 야구라는 무생물은 늘 질문을 던져주기에 ‘불혹’은 언감생심이다. 그래도 하나의 ‘혹’은 없앨 수 있겠다. 만년 꼴찌 팀 스물두 살의 선수(한화 정은원)가 백업으로 나왔다가 연장 10회초 결승포로 ‘미스터 올스타’(MVP)에 등극하는 드라마를 어디에서 볼 수 있겠는가. 야구는 그깟 공놀이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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