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 히어로즈 이정후가 2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2 KBO리그 플레이오프 4차전 엘지(LG) 트윈스와 경기 1회말 1사 1루에서 안타를 쳐낸 뒤 기뻐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을야구 시작 직전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는 이런 말을 했었다.
“포스트시즌은 ‘0’으로 시작한다. 10승하면 우승한다.”
준플레이오프(3선승제), 플레이오프(3선승제), 한국시리즈(4선승제)를 모두 이겨서 ‘왕좌의 게임’에서 기필코 승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정후는 “2019년에도 준플레이오프에서 시작해서 한국시리즈까지 진출했다”면서 “나는 홈런 타자가 아니기 때문에 찬스가 오면 최대한 찬스를 살리려고 할 것”이라고도 했다.
이정후의 다짐대로 키움 히어로즈는 준플레이오프(3승2패), 플레이오프(3승1패)를 기어이 뚫어냈다. 케이티와는 5차전까지 가는 접전이었는데 이정후는 19타수 7안타(0.368) 3타점으로 팀 승리의 밑돌을 놨다. 그의 방망이는 ‘0’의 상태가 아니라 리그 타격 5관왕의 모습 그대로였다.
아버지(이종범 LG 2군 감독)와 ‘예비 매제’인 고우석이 속한 엘지(LG)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 때는 더욱 거침이 없었다. 16타수 8안타(타율 0.500)로 엘지 마운드를 두들겼다. 승부의 고빗길이던 3차전에서 임지열의 역전 투런에 이어 쐐기포를 연달아 터뜨리기도 했다. 포스트시즌 개인 통산 첫 홈런이었다. 이정후의 맹활약에 키움은 불리한 조건에서도 20년 만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노리던 정규리그 2위 엘지(LG) 트윈스를 꺾었다. 실책 속에서 1차전을 내줬지만 2~4차전을 내리 따냈다. 그리고, 2019년처럼 이정후는 기자단 투표(79표 중 43표)로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키움 히어로즈 선수들이 28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2 KBO리그 엘지 트윈스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승리하고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뒤 관중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후는 경기 뒤 인터뷰에서 “포스트시즌은 경험보다 기세가 중요하다고 보는데, 처음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선수들도 몇 번씩 해본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뛰고 있다. 다들 잘해서 기분 좋다”고 했다. 그는 이어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시즌에 해냈다는 것이 더욱 뜻이 깊다”면서 “2019년 한국시리즈보다 더 간절하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더라도 이 선수들과 함께 웃으면서 서로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지금 팀 분위기가 좋다. 영화로 찍어도 될 만큼 좋다”고 밝혔다. 키움은 박병호(KT 위즈)의 이적으로 2022시즌 개막 전에 하위권으로 분류된 바 있다.
이정후의 방망이는 이제 정규리그 1위 에스에스지(SSG) 랜더스를 겨냥한다. 키움과 에스에스지는 11월1일부터 에스에스지랜더스필드에서 한국시리즈 1차전을 치르게 된다. 정규리그 때 두 팀의 전적은 11승5패로 에스에스지가 앞섰다. 이정후는 에스에스지 투수들을 상대로 타율 0.313 3홈런 10타점의 성적을 올렸다.
이정후는 타격 5관왕을 달성한 뒤 구단을 통한 소감에서 “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5관왕이 됐다. 비로소 저에게 늘 따라다녔던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떼고 야구선수 이정후로 당당히 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2022년 가을, ‘이종범의 아들’이 아닌 ‘이정후’가 오롯이 가을의 전설을 만들어가고 있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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