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벨 하딤 체코 대표팀 감독이 13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본선 1라운드 조별리그 호주와 경기 도중 투수 교체를 위해 마운드로 다가가 선발 슈나이더에게 90도 폴더 인사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체코야구협회 SNS 갈무리
마운드 위 투수는 경기 68번째 공을 던졌다. 1라운드 투구 수 제한(65개)을 이미 넘은 상태였다. 감독은 뚜벅뚜벅 마운드로 걸어갔다. 그리고, 모자를 벗어 투수에게 90도로 인사를 했다. 어려운 경기에서 잘 버텨준 에이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었다. 투수의 얼굴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들은 체코에서는 소방관, 신경외과 의사였다. 13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본선 1라운드 B조 조별리그 호주-체코전에서 나온 장면이었다.
천신만고 끝에 유럽 예선을 뚫고 사상 첫 본선 무대에 오른 체코는 ‘1승’을 품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첫 경기였던 중국전 9회초 터진 역전 3점포로 얻은 값진 승리였다. 체코는 이 승리로 2026 WBC 때는 예선 없이 본선에 직행하게 됐다.
야구 변방 체코의 이번 대회 도전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선수 대부분 본업은 따로 있고 야구는 부업으로 하는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전 선발로 등판한 루카시 에르콜리는 체코협회 홍보직원이었다. 중국전에서 역전 결승 3점포를 터뜨린 마르틴 무지크는 체코에서 구장 관리인(그라운드키퍼)으로 일한다. 일본전 선발 온드르제이 사토리아는 전기 기사다.
파벨 하딤 체코 감독의 폴더 감사 인사를 받은 호주전 선발 마르틴 슈나이더는 37살의 현직 소방관이다. 24시간 임무를 마치고 48시간 동안 쉬면서 집 뒷마당에서 공 던지는 연습을 하고 경기를 뛴다. 리그에서는 불펜 투수 겸 유격수로 활약한다.
슈나이더는 이날 야구를 전문으로 하는 호주 선수들을 상대로 5⅓이닝 1피안타(1피홈런) 1탈삼진 1볼넷 1실점의 빼어난 투구를 보여줬다. ‘소방관’으로 마운드 불도 잘 껐다. 그는 대회 전 인터뷰에서 “야구 선수와 소방관은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면서 “멘탈이 강해야 하고 함께하는 내 동료를 믿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체코는 이날 잘 싸웠으나 3-8로 호주에 졌다. 본선 무대 데뷔 성적은 1승3패로 마감됐다. 그들의 도전은 멈췄지만 체코 선수들이 보여준 야구 열정은 감동을 주기 충분했다. 체코 선수들이 점수를 올리거나 훌륭한 수비가 나올 때마다 도쿄돔에 우뢰와 같은 박수가 터졌던 게 그 증거다. 전세계에 체코에서도 야구를 한다는 사실을 보여준 그들은 진짜 승자였다.
신경외과 의사인 하딤 감독은 “야구가 지금 자국 스포츠 가운데 가장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이번 대회 이후에도 야구 인기가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모든 경기를 마친 뒤에는 웃으면서 “3년 뒤에 봅시다”라는 말을 남겼다. 스스로를 “야구 광신도”라 칭하는 체코 선수들의 야구는, 야구를 직업으로 삼는 이들에게 야구의 진짜 재미가 뭔지 알려주기 충분했다.
도쿄/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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