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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살 ‘등번호 43번’ 무명 방출자, 40살 ‘34번’ 유명 개척자 되기까지 [김양희의 맛있는 야구]

등록 2023-06-23 06:00수정 2023-06-23 08:12

개인 통산 최다 타점 최형우
‘기록의 사나이’가 된 기아(KIA) 타이거즈 최형우. 연합뉴스
‘기록의 사나이’가 된 기아(KIA) 타이거즈 최형우. 연합뉴스

프로 첫 등번호는 43번이었다. 아마 때는 10번, 22번을 달았는데 프로에서는 그냥 남아 있는 번호를 받았다. 팀을 떠난 누군가의 등번호였을 것이다. ‘야구 선수로 성공해야지’ 하는 마음은 딱히 없었다. 롤 모델도,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없었다. 우승해본 적도 없어서 성취감 같은 것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선수’였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포수에서 외야수로, 1루수로 포지션을 바꿨지만 그의 수비 능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치는 능력은 있었으나 압도할 정도는 아니었다. 결국 ‘반쪽짜리 선수’로 낙인이 찍혔고 프로 4년 차 때 방출됐다. 프로 구단은 신인드래프트 중하위권 지명 선수에게 관대하지 않다. 각 구단마다 매년 10명이 넘는 신인들이 새롭게 들어오고 그들에게는 자리가 필요하다. 그는 2차 6라운드 48순위로 뽑힌 선수였다.

23살의 나이에 그는 첫 직장에서 쫓겨났다. “타성에 젖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최형우(40·KIA 타이거즈)는 돌아본다. 이전까지 야구에 대한 애정은 딱히 없었지만, 실직자가 되고 간절함이 생겼다. 그는 집안의 장남이기도 했다. 신생팀 경찰청 야구단에 지원했고 외야수로 변신해 악착같이 훈련했다. 수비는 여전히 헤맸지만 타격 능력은 좋아졌다. 퓨처스(2군)리그에서 2006년 타율 0.344를 기록했고 2007년에는 타율이 0.391까지 올랐다. 2007년에는 도루를 제외하고 타격 7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리고, 그를 내쳤던 첫 직장 삼성 라이온즈로 돌아왔다.

등번호는 34번으로 바꿨다. 보스턴 레드삭스 왼손 거포였던 다비드 오르티스의 등번호와 같았다. 등번호 34번은 2군 경기 경험을 발판 삼아 왼손 거포로 성공하기 위한 그의 다짐이기도 했다. 프로 데뷔 6년 만에 비로소 야구 인생 진짜 목표가 생겼다. 43번에서 34번으로 뒤집힌 등번호처럼 그의 인생도 180도 달라졌다. 2008년 당시 기준으로 최고령 신인왕에 올랐고 2011년에는 홈런왕이 되기도 했다. 자유계약(FA) 선수로 총액 세자릿수 계약 시대도 열었다. 삼성에서 기아(KIA) 타이거즈로 팀을 옮긴 뒤에도 활약을 이어가며 이적 첫 해 한국시리즈 우승(2017년)에 기여했다.

최형우를 상징하는 세 글자는 ‘꾸준함’이다. 2008년 다시 1군 무대로 돌아온 뒤 2022년까지 15년간 매해 100경기 이상을 소화했다. 그는 아파도 구장에서 내색하는 일이 없었다. 아픈 모습을 보이면 경기에서 제외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거듭 ‘나 자신하고는 타협하지 말자’, ‘나 자신한테 약해지지 말자’며 최면을 걸었다. “다시는 내쳐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는지 모르겠다”고 그는 회상한다. 다시는 타석에 서지 못할 수도 있다는 공포를 이미 겪어봤던 그였다. 절실함이 꾸준함과 결합해 그는 KBO리그 1500타점 시대를 처음 열었다.

최형우의 오른팔에는 어머니, 동생들, 아내, 아이들, 그리고 반려견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가족을 품고 그는 한 타석, 한 타석에 집중한다. “언젠가 은퇴를 하더라도 후회스러운 것은 없다”라고 말하는 것도 매 순간 그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기 때문이다. 23살의 실직은 그에게 커다란 충격파를 남겼다. 하지만 그는 악착같이 버티며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왔다. 긴 세월을 거쳐 무명의 방출자에서 유명의 개척자가 된 최형우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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