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한겨레와 만난 이정후(25·키움 히어로즈)는 이런 말을 했었다. “나에게 히어로즈는 어떤 면에서 ‘로또’였다. 고마운 것밖에 없는 은인이다.”
이정후는 이제 ‘은인’ 구단에 1882만5000달러(247억원)의 ‘로또’ 보상금을 안기고 미국 메이저리그로 건너간다. 아직 공식 발표가 나지는 않았으나 이정후는 4년 뒤 옵트 아웃 조항을 포함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6년 1억1300만달러(1484억원)에 계약한 것으로 13일(한국시각) 미국 매체를 통해 전해졌다.
만약 이정후가 자유계약(FA) 신분이었다면 히어로즈 구단은 샌프란시스코로부터 이적료를 단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정후는 국외 구단 이적에 구단 허락이 필요한 신분이다. KBO리그에서 7시즌을 채운 선수들은 소속 구단의 허락을 받은 뒤 포스팅(비공개 경쟁 입찰)을 통해 미국, 일본 등 국외리그 진출에 도전할 수 있다.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와 계약이 마무리 되면 국내 리그를 거쳐 포스팅으로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6번째 선수가 된다.
이정후의 경우 1년만 더 KBO리그에서 뛰었다면 FA신분으로 빅리그 문을 두드릴 수 있었다. 하지만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포스팅으로 빅리그에 진출했기 때문에 향후 국내 리그로 복귀했을 때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어야 한다.
국내 선수 최초로 포스팅에 도전한 선수는 1998년 이상훈(당시 LG 트윈스)이었다. 하지만 최고 응찰액이 60만달러에 그쳐 엘지가 수용하지 않았다. 진필중(당시 두산 베어스)은 2002년 두 차례 포스팅을 신청했으나 2만5000달러를 제시받아 빅리그 진출이 좌절됐다. 임창용(2002년·65만달러), 최향남(2009년·101달러) 또한 포스팅 액수가 너무 적어 구단이 수용 거부했다. 손아섭, 황재균(이상 2015년), 김재환(2019년), 나성범(2020년)은 아예 응찰 구단이 없었다.
포스팅 제도 아래서 2017년까지는 비공개 입찰로 가장 많은 이적료를 적어낸 구단이 단독 협상권을 가졌다. 류현진, 강정호, 박병호가 이런 과정을 거쳐 빅리그로 건너갔다. 류현진이 엘에이(LA) 다저스로부터 2573만7737달러33센트의 이적료를 받아낼 수 있던 배경이다. 하지만 2018년 한·미프로야구 협정이 개정되면서 포스팅을 신청한 선수는 FA선수처럼 다수의 구단과 동시 협상한 뒤 최종 선택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정후 이전에 김광현(2019년), 김하성(2021년)이 이 과정을 따랐다.
포스팅 금액은 이전보다 줄어들었다. 전체 보장 계약 금액이 2500만~5000만달러 사이면 2500만달러의 20%(500만달러)와 2500만달러 이상 금액에 대한 17.5%를 더해 원소속 구단에 준다. 전체 보장 금액이 5000만달러를 초과하면 2500만달러의 20%(500만 달러), 2500만~5000만달러의 17.5%, 5000만달러 초과 금액의 15%를 모두 더한 것이 이적료가 된다. 보장 금액이 2000만달러 이하일 경우에는 20%에 해당하는 금액만 원소속 구단에 준다. 이에 따라 김광현(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년 800만달러 계약)의 이적료는 160만달러, 김하성(샌디에이고 파드리스 4년 2800만달러 계약)의 이적료는 각각 160만달러와 552만5000달러로 책정됐다.
현재 이정후의 매제이자 이종범 전 엘지 코치의 사위인 우완 마무리 투수 고우석(25·LG) 또한 포스팅을 신청한 상황이다. 고우석은 1월4일까지 메이저리그 전 구단과 협상할 수 있다. 엘지에서는 FA 신분인 불펜 투수 함덕주 또한 지난달 말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신분 조회를 받았다. 그는 이적료 없이 빅리그 진출이 가능하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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