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SK 수석코치
[만나봅시다] 이만수 SK 수석코치 /
1958년 개띠니까 새해 우리 나이로 꼭 쉰. 하지만 그는 여전히 유쾌한 청년이다.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고, 남을 즐겁게 해주는 입담도 예전 그대로다.
‘돌아온 헐크’ 이만수 프로야구 에스케이(SK) 와이번스 수석코치. 그가 9년 만에 귀국해 빨간 유니폼(에스케이)을 입은 지도 벌써 두달이 흘렀다. 그 사이 제주도와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 훈련을 다녀오느라 쉴 틈이 거의 없었다. 그는 선수들을 보면서 “아들같고 조카같다. 너무 귀엽다”고 싱글벙글이다. 그러면서 “한국에 오길 정말 잘했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한국을 왜 떠난 걸까? “고등학교 때부터 메이저리거가 꿈이었어요. 한국에도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꿈은 접었지만, 은퇴 후에는 꼭 미국 야구를 배우고 싶었죠.” 그는 마흔살까지 선수생활을 하겠다던 다짐대로 1997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은퇴했다. 홈런왕과 떠벌이 ‘안방마님’으로 국내 프로야구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16년간 화려한 선수생활 접고 미국행
마이너 코치 때 주심에게도 떠벌떠벌
“프로라면 팬들 즐겁게 하는 게 우선”
이 코치는 16년간의 프로생활을 접고 이듬해 3월, 자비를 들여 홀연히 미국으로 떠났다. 국내 최고 야구스타 자리를 스스로 박찬 그에게는 혹독한 시련이 닥쳤다. 미국 에이전트는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마이너리그 5개 팀의 캠프가 차려진 플로리다에 그를 ‘버리고’ 가버렸다. 말도 안통하고 아는 사람도 없었다. 미국 코치들의 눈치만 살피며 졸졸 따라다녔다. 미칠 노릇이었다. 그냥 돌아가고 싶어 몇번이나 짐을 쌌다 풀었다.
위기는 ‘이만수 식’으로 헤쳐갔다. 어느날 마이너리그 경기에서 3루 코치로 나섰다. 경기는 지루했다. 하지만 그는 선수시절처럼 ‘코처스 박스’에서 쉴새없이 떠들었다. 6회쯤 됐을까? 주심이 다가오더니 “너 미쳤니”(유 크레이지)하면서 느닷없이 퇴장을 선언했다. 그와 주심은 각각 영어와 한국말로 말다툼을 벌였다. 관중들은 깔깔대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잠시 뒤 주심이 다가와 “퇴장선언은 농담”이라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알고보니 5회가 끝난 뒤 두팀 감독과 주심이 관중들을 즐겁게 해주자며 각본을 짠 것이었다. 소문은 금세 메이저리그까지 퍼졌다. 너나없이 “미스터 리가 누구냐”고 찾았다. 그는 선수보다 더 유명해졌다. ‘빅 스마일’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이 코치는 “이게 바로 스포테인먼트”라고 설명했다. 프로는 팬들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는 것. 그는 지도자로 실력을 인정받았다. 3년째 되던 해 메이저리그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가 됐다. 2005년에는 월드시리즈 우승의 영예도 누렸다. 지난해 5월에는 팀과 2년간 재계약까지 했다. 그런데도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에 온 것은 바로 에스케이가 ‘스포테인먼트’를 내세웠기 때문이란다.
그는 선수시절 누구보다 즐겁게 야구를 했다. 포수 마스크를 쓰고는 쉴새없이 떠들었다. 특히 홈런을 친 뒤 펄쩍펄쩍 뛰며 다이아몬드를 돌던 모습은 올드 팬들의 눈에 아직도 선하다. 그런데 홈런 친 다음 타석 때는 유난히 빈볼을 많이 맞았다. 약이 오른 상대투수의 보복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안타 치고 웃지도 않는 선수를 보고 팬들이 즐거워하겠느냐”며 “홈런 친 뒤엔 더더욱 기뻐해야 팬들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가 1984년 기록한 국내프로야구 최초의 타격 3관왕(타율 홈런 타점)은 22년 만인 지난해에야 2호(이대호·롯데)가 등장했다. 그는 “프로는 기록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팬들은 기록을 보기 위해 야구장에 온다”며 “내 기록도 너무 늦게 깨졌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한국에 오자마자 인천에 집을 구했다. 연고지 팬들과 더 가깝게 지내고 싶어서다. 박철호 에스케이 홍보팀장은 “이 코치가 입단한 뒤 홈페이지 가입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고 귀띔했다. 9년 만에 돌아온 국내 그라운드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고 하자, 그는 자신있게 말했다. “기대해도 좋습니다.”
인천/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사진 에스케이 제공
마이너 코치 때 주심에게도 떠벌떠벌
“프로라면 팬들 즐겁게 하는 게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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