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10월22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삼성이 해태에게 5-6 역전패를 당한 뒤 삼성 팬들이 45인승 해태 선수단 버스에 불을 질렀다. 1990년 8월26일 잠실구장에선 LG-해태 경기 도중 두 팀 관중 500여명이 그라운드로 난입해 패싸움을 벌였다. 사진제공/한국야구위원회
야구에 목숨 건 3040 아저씨들 = 소주병은 필수…패하면 난동
소풍온듯 즐기는 20대연인·가족들 = 여성 부쩍 늘어…가족석 불티
소풍온듯 즐기는 20대연인·가족들 = 여성 부쩍 늘어…가족석 불티
1986년 10월22일 밤 9시45분 대구구장 앞.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삼성이 해태에게 5-6 역전패를 당하자, 삼성 팬 2천여명이 “타도 해태”를 외쳤다. 급기야 흥분한 몇몇 관중들은 45인승 해태 선수단 버스에 불을 질렀다. 1차전 광주 경기에서 삼성 투수 진동한이 술 취한 관중에게 소주병으로 머리를 맞은 데 대한 ‘보복’이었다. 버스는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관중들은 경찰이 최루탄을 쏘고서야 해산했다. 당시 난동이 어찌나 살벌했는지, 지금도 야구계에선 ‘대구 폭동’으로 불린다. 1990년 8월26일 잠실구장에선 LG-해태 경기 도중 관중 500여명이 그라운드로 난입했다. 승부가 LG쪽으로 기울어지자 흥분한 3루쪽 해태 팬들이 먼저 경기장으로 내려왔고, 이에 맞선 LG 팬들과 충돌했다. 관중 10여명이 다쳤고, 경찰은 19명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2007년 5월 19, 20일. 주말을 맞아 잠실 등 전국 4개 구장에는 이틀간 17만명이 몰려들었다. 사직구장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지만 별다른 불상사는 없었다. 특히 롯데는 주말 3연전을 모두 졌는데도 이틀 연속 사직구장은 만원을 이뤘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진형 홍보팀장은 “과거 야구장 관중들은 승패에 집착하는 경향이 심한 반면, 요사이는 즐기러 오는 분들이 대부분”이라고 진단했다. 이승재(41·의사·경기 수원시)씨는 “메이저리그나 일본프로야구를 즐기게 되면서 관중문화도 성숙해진 듯하다”고 했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후 관중 난동사건은 시즌마다 심심찮게 일어났다. 깡통이나 오물 투척은 예사. 김현준(36·회사원)씨는 “학창시절 야구장에 간다면 부모님이 ‘깡통이나 병 맞는다’며 말렸다”면서 “부산이나 광주로 원정 응원을 가면 홈팬들에게 맞을까 봐 숨죽이고 경기를 봐야 했다”고 기억했다.
기아 최희섭이 국내 무대 첫 선을 보인 지난 19일, 11개월만에 만원 관중으로 꽉 찬 잠실구장에서 두산 팬들이 막내풍선을 두드리며 환호하고 있다. 사진제공/두산 베어스
그러나 최근엔 가족들이 함께 나들이삼아 찾을 정도로 야구장 풍경이 크게 바뀌었다. 특히 관중 드세기로 유명한 부산 사직구장과 마산구장의 변화가 눈에 띈다. 서정근 롯데 홍보팀장은 “주 관중이 과거 30~40대 아저씨들에서 요즘엔 10대 후반~20대 연인과 젊은 부부로 바뀌었다. 특히 여성관중이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야구장에 가족석이 등장한 것은 이런 변화의 한 단면이다. 2002년 인천 문학구장과 지난해 사직구장에 ‘스카이박스’(가족 및 단체석)가 생겼고, 잠실구장엔 올해 1루와 3루측 관중석에 테이블이 놓인 가족석이 만들어졌다. 김정균 두산 마케팅 팀장은 “올해 만든 가족석이 50석으로, 좌석당 1만5천원인데 거의 매 경기 매진된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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