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신사동의 한 커피숍, 야구장에 있어야 할 심판들이 모여 있었다.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 신상우 총재의 강경발언이 전해진 뒤였다. 1차 기자회견을 하던 도중 탁자 위의 물컵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쨍그렁’ 소리를 냈다. 겉으로 보기에 ‘26명(허운 심판쪽) 대 10명(비 허운 심판 쪽)’으로 쪼개진 한국프로야구 심판진의 분열상을 전해주는 듯했다. 심판들은 왜 서로에게 칼을 들이밀게 됐을까.
사태의 발단은 1월3일 심판 팀장 인사 때문. 당시 하일성 KBO 사무총장은 차장직을 신설하면서 조종규 심판을 차장으로 임명했다. 허운 심판쪽은 “조 심판이 허 심판보다 야구 선배이기는 하지만, 심판경력에 있어서는 조 심판이 허 심판보다 팀장경력이 1년 짧다. 조 심판이 차장이 된 것은 하 총장과 조 심판이 원래 돈독한 친분관계에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팀장 임명에 대해서도 “원래 심판 경력과 서열을 따지면, 오석환 최규순 나광남 문승훈 심판이 팀장이 되어야 했는데 하 총장이 측근을 팀장으로 앉히려 하면서 최규순·나광남 심판이 뒤로 밀렸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 허운쪽 심판 중 한 명은 “이미 팀장인사 이전부터 심판들은 나뉘어져 있었는데, 인사 이후에 완전히 갈라졌다”고 전했다.
당시 허운 심판쪽의 반발은 KBO가 심판들에게 징계를 내리면서 일단 봉합됐다. 하지만, 지난 15일 “허운 심판을 복귀시키라”는 신 총재의 지시를 어긴 김호인 심판위원장이 직위해제되고, 2군으로 내려갔던 허운 심판의 1군행이 결정되자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비 허운쪽 심판들이 반발한 것. 이들은 17일 잠실구장에 모임을 가진 뒤, 다음날 8개 구단에 결의문을 보냈다. 심판위원회 이름으로 된 결의문의 내용은 “김 심판위원장의 직위해제 결정은 부당하고, 허운 심판의 1군 복귀결정을 철회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에 허운 쪽 심판들은 “심판 10명이 어떻게 심판위원회를 대변하느냐”면서 “그쪽이 모여서 결의문을 내보낸 것도 결국 파벌의 모습을 보여준 것인데 허운 심판만 징계가 있고, 그쪽은 아무 징계가 없다”고 분해 했고, 결국 19일 허운 심판의 재 2군행이 결정되자 모임을 갖고 “심판인사에 대한 KBO의 명확한 입장표명이 없으면 사표를 내겠다”고 기자회견을 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결정은 비록 “팬들을 위해서”라는 명목으로 하루 만에 철회됐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허운 심판쪽이 “허운 심판의 1군 복귀와 비정상적인 인사가 철회될 때까지 계속 투쟁을 해나가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비 허운 심판쪽도 “앞으로 더 복잡해지고 힘들어질 것”이라며 파벌싸움이 더 깊게 진행될 것임을 내비쳤다.
현재 허운 심판쪽이나 비 허운 심판쪽 모두 신상우 총재에게 면담을 요청한 상태다. 결국 해결의 키는 신 총재와 KBO가 쥐고 있는 셈. 그러나, 팀장 인사 이전부터 잠재돼 있던 파벌 갈등이 단시간에 해결될지는 미지수다. 때마다 미봉책으로 일관하면서 사태를 키워온 KBO가 이번에는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할지 지켜볼 일이다.
김양희 박현철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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