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명부
프로야구 초창기엔 선발 로테이션은 물론이고 선발과 중간계투, 마무리 구분도 없었다. 원년(1982)부터 1987년까지 다승왕은 늘 20승을 넘었고, 에이스는 선발과 마무리 가리지 않고 필요할 때면 언제든 마운드에 올라야 했다. 삼미 장명부는 1983년 전무후무한 30승을 거뒀는데 그는 한 시즌 동안 427⅓이닝을 던졌다. 지난해 가장 많이 던진 다니엘 리오스(두산)의 233이닝과 비교하면 얼마나 혹사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한화 송진우는 1992년 선발투수로 뛰면서 19승(2구원승)17세이브를 올려 다승왕과 세이브 타이틀을 동시에 차지했다. 큰 점수차로 앞선 4회에 등판하는 등 시즌 말 최다승 투수를 만들려는 코칭스태프의 ‘배려’가 작용한 결과였다. ‘국보’ 선동열도 다승왕에 네번(1986, 1989~1991)이나 올랐지만 선발승 만으로 최다승 투수가 된 적은 없다.
해외 프로야구를 경험한 감독·코치들이 늘어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4~5인 선발 로테이션이 자연스럽게 정착되었다. 1993년엔 조계현(17승)이 처음으로 순수한 선발승으로만 다승왕에 올랐고 LG 이상훈은 1995년 선발로만 20승을 거뒀다. 1992년부터 5년간 LG트윈스 감독을 맡으면서 투수 로테이션을 정착시킨 이광환 KBO 육성위원장은 “승수를 쌓아 몸값을 올리려는 선수들이 처음엔 ‘로테이션 시스템’을 혼란스러워 했다”고 회상한다.
여전히 시즌 종반이나 단기전에선 선발과 마무리 보직이 뒤바뀌기도 하고, 3인 선발 체제로 임시 운영될 때도 있다. 드물지만 등판 뒤 3, 4일째날 불펜 피칭 대신 실전에 투입돼 컨디션을 점검하기도 한다. 7월 29일 삼성전 선발로 나와 6이닝 106개를 던졌던 기아 윤석민은 1일 SK전에 나와 공 57개를 던지고 패전투수가 됐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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