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이 바빠질수록 ‘불펜포수’들의 업무량도 늘어난다. 불펜포수는 경기 전 이미 40~50개 배팅볼을 던진 뒤 경기가 시작되면 불펜 투수들과 함께 대기상태가 된다. 사진 두산베어스 제공
‘선수의 꿈’ 가슴에 묻고 얼굴없는 ‘그림자’ 생활
두산 백훈(25)은 상대 선발이 왼손투수로 예고될 때마다 마운드에 오른다. 여느 투수처럼 흙이 쌓여있는 마운드 위가 아닌 흙과 잔디 경계선에서 던진다. 그는 경기 전 선수들이 타격연습할 때 꼭 필요한 사람, ‘배팅볼 투수’다.
프로야구 8개 구단은 기본적으로 왼손 배팅볼 투수를 1명씩 데리고 있다. 이들은 배팅볼만 전문적으로 던지고, 다른 훈련보조요원인 불펜포수도 경기 전 가볍게 배팅볼을 던진 뒤 경기 중에는 불펜에서 몸을 푸는 투수들 공을 받는다. 보통 구단은 왼손 배팅볼 투수 1명, 불펜포수 2명을 데리고 있는데 삼성·LG·SK처럼 여유있는 구단은 오른손 배팅볼 투수를 더 데리고 있다. 이들은 구단의 장비를 챙기는 역할까지 담당한다.
배팅볼 투수나 불펜포수는 프로지명을 받지 못하고 신고선수로도 뽑히지 못한 선수들로, 테스트를 거치거나 모교 감독 추천으로 구단과 인연을 맺는다. 드물게는 구단 스카우트 눈에 들어 합류하는 경우도 있다. “고교 졸업 후 대학에 가려고 했는데 집안 사정상 돈을 벌어야 했어요. 마침 두산 스카우트팀에서 저를 눈여겨봤고, 곧바로 배팅볼 투수가 됐죠.” (백훈)
전문 배팅볼 투수가 하루에 던지는 공은 200~300개. 가끔 공을 다 던지고 난 뒤 팔이 퉁퉁 붓기도 하지만, 아이싱은 눈치가 보여 엄두를 못 낸다. 여름엔 훈련시간이 보통 햇볕 쨍쨍한 오후 3시라서 공을 다 던지고 나면 화장실로 달려가 토할 때도 있다. 어깨를 다치면 다음해 재계약이 불투명한 터라 아프다는 사실을 숨긴 채 배팅볼을 던지기도 한다. 전문 배팅볼 투수와 달리 불펜포수가 던지는 하루 배팅볼수는 40~50개 정도다.
배팅볼을 던질 때는 철저히 타자 입맛에 맞춰 공을 뿌린다. 타자 취향 대로 구질을 말해줄 때도 있고, 그냥 던질 때도 있다. 구속은 대체적으로 85~95㎞. 너무 빠르거나 제구가 엉망일 때는 오히려 타자들이 타격감을 잃기 쉬워 구속 조절과 제구력은 필수다. 2001년 현대에서 배팅볼투수를 시작해 지금은 SK에 몸담고 있는 김동민(26)은 “공 던질 때 타자들 방망이 나오는 걸 보면 그 선수의 컨디션을 금방 안다”면서 “공 던진 날 선수들 방망이가 잘 맞으면 괜히 뿌듯하고, 타자들이 너무 못 치면 ‘내가 공을 못 던졌나’ 죄책감이 든다”고 했다.
훈련보조요원은 1년 계약직이며, 초봉은 1300만원~1500만원. 동산고 졸업 후 바로 프로야구 불펜포수 길로 들어선 SK 최지혁(19)은 “팀성적이 좋으니까 재미있고, 배울 점도 많지만 선수로 직접 뛰고 싶은 마음이 커요. 올해 끝나면 군대 가든지, 다시 프로에 도전하든지 해봐야겠어요”라고 했다. 2년차 두산 불펜포수 오상묵(20)도 “집에서 계속 프로선수에 도전해 보라고 하는데 모르겠어요”라며 “2군에서 훈련보조할 때는 그나마 선수들이 비슷한 또래라서 똑같이 훈련하고 그랬는데, 1군에서는 거의 선배들이라 훈련을 같이 하기가 힘들어요”라고 했다.
훈련보조요원들은 가끔 프로 테스트 권유를 받기도 하지만, 철저히 시스템이 갖춰진 현실에서 프로로 발을 들여놓는 것은 쉽지 않다. 20대 중반 훈련보조요원들이 정식 구단 프런트를 꿈꾸는 이유다. 불펜포수로 있다 지금은 구단 직원이 된 조상수 LG 1군 매니저나, 훈련보조요원에서 두산 전력분석요원이 된 김호민씨처럼 가능성은 열려 있는 편.
삼성 양준혁의 통산 3000안타 도전이나 두산 다니엘 리오스의 외국인투수 첫 20승 도전도 결국 불펜포수와 배팅볼투수 손끝에서 처음 시작된다. 그들은 프로야구를 완성해 나가는 그림자인 셈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배팅볼 투수’서 120승 신화까지
한용덕 한화 투수코치 트럭 운전사, 배팅볼 투수, 연봉 600만원…. 그리고 통산 120승. 모두 한 사람을 묶는 단어들이다. 한용덕(42) 한화 투수코치. 지금은 어엿한 프로야구 1군 투수코치이지만, 그는 배팅볼 투수로 프로를 시작했다. 동아대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3년 동안 그라운드를 떠나 있을 때 한 코치는 트럭 운전, 임시 전화선로 가설 등 안해 본 일이 없다. 그러다 야구장에서 공을 던지는 프로야구 투수를 봤고 “내가 던져도 저보다는 낫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후 학교 선배였던 빙그레(한화 전신) 매니저를 통해 배팅볼 투수의 길이 열렸다. 그때가 1986년. 처음에는 연습생 신분으로 선·후배를 상대로 공을 던진다는 게 창피하기만 했다. 너무 창피해 야구장 근처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야구선수 꿈을 위해 입술을 꽉 깨물고 계속 공을 던졌고, 배팅볼 투수 3개월 만에 당시 김영덕 빙그레 감독 눈에 들어 정식선수 등록을 했다. 첫 연봉은 600만원이었다. 선수시절 내내 한 코치를 지탱해준 힘은 야구선수가 아니었던 3년 동안의 기억이었다. “정말 바닥까지 갔기 때문에 프로생활 내내 힘든 게 없었어요. 어떤 상황에 있어도 그때보다 최악은 아니니까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죠.” 그는 프로생활 17년 동안 120승118패 평균자책 3.54의 성적을 남겼다. 한 코치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스카우트라는 개념이 없어서 재목이 있어도 묻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스카우트팀이 많이 활성화돼 잠재력있는 선수는 대부분 프로지명을 받기 때문에 배팅볼 투수 신화가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배팅볼 투수가 프로에 도전하려면 예전보다 곱절 노력해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땡볕이 내리쬐는 오후 2시께부터 2시간 남짓. 기온은 30도를 거뜬히 넘기고 인조잔디구장은 이보다 4~5도 더 높다. 200개 넘는 배팅볼을 던지고 나면 누구나 녹초가 될 수밖에 없다. 사진 두산베어스 제공
‘배팅볼 투수’서 120승 신화까지
한용덕 한화 투수코치 트럭 운전사, 배팅볼 투수, 연봉 600만원…. 그리고 통산 120승. 모두 한 사람을 묶는 단어들이다. 한용덕(42) 한화 투수코치. 지금은 어엿한 프로야구 1군 투수코치이지만, 그는 배팅볼 투수로 프로를 시작했다. 동아대 1학년 때 학교를 자퇴하고 3년 동안 그라운드를 떠나 있을 때 한 코치는 트럭 운전, 임시 전화선로 가설 등 안해 본 일이 없다. 그러다 야구장에서 공을 던지는 프로야구 투수를 봤고 “내가 던져도 저보다는 낫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후 학교 선배였던 빙그레(한화 전신) 매니저를 통해 배팅볼 투수의 길이 열렸다. 그때가 1986년. 처음에는 연습생 신분으로 선·후배를 상대로 공을 던진다는 게 창피하기만 했다. 너무 창피해 야구장 근처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온 적도 있었다. 하지만 야구선수 꿈을 위해 입술을 꽉 깨물고 계속 공을 던졌고, 배팅볼 투수 3개월 만에 당시 김영덕 빙그레 감독 눈에 들어 정식선수 등록을 했다. 첫 연봉은 600만원이었다. 선수시절 내내 한 코치를 지탱해준 힘은 야구선수가 아니었던 3년 동안의 기억이었다. “정말 바닥까지 갔기 때문에 프로생활 내내 힘든 게 없었어요. 어떤 상황에 있어도 그때보다 최악은 아니니까 그냥 웃으면서 넘어갔죠.” 그는 프로생활 17년 동안 120승118패 평균자책 3.54의 성적을 남겼다. 한 코치는 “1980년대만 하더라도 스카우트라는 개념이 없어서 재목이 있어도 묻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지금은 스카우트팀이 많이 활성화돼 잠재력있는 선수는 대부분 프로지명을 받기 때문에 배팅볼 투수 신화가 나오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배팅볼 투수가 프로에 도전하려면 예전보다 곱절 노력해야 한다는 설명도 빼놓지 않았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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