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문학구장에서 팬티차림으로 그라운드를 돈 이만수 코치. 사진/연합뉴스(왼쪽사진). 월드시리즈 이어 한국시리즈 제패한 이만수(49) 수석코치. 사진 김경호 기자 (오른쪽사진).
월드시리즈 이어 한국시리즈 제패 이만수 코치
SK가 우승 축배를 들던 29일 밤, 이만수(49) 수석코치도 샴페인을 흠뻑 뒤집어썼다. 입가엔 예의 사람좋은 미소가 가득했다. 그는 “월드시리즈에 이어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했으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며 웃었다. 2005년 가을 시카고 화이트삭스 불펜코치로 월드시리즈 정상을 맛봤고, 그해 백악관을 방문하는 특별한 경험도 했다. 이 코치는 이날 야구장을 찾은 부인(이신화·49) 큰아들(하종·24)과 감격의 순간을 함께 했다. 그러면서 “애틀랜타에 있는 작은 아들 언종이가 가장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솔직히 1·2차전 지고 나서 4연패 당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며 “하지만 3·4차전 두산 방망이가 소극적인 것을 보고 우승을 확신했다”고 털어놨다.
지도자로서 한국과 미국 프로야구 정상에 올랐지만, 현역 시절엔 우승과 지독히도 인연이 없었다. 그는 프로 원년인 1982년 삼성 유니폼으로 입고 ‘헐크’라는 별명으로 16년 동안 그라운드를 누볐다. 1984년엔 국내 최초로 타격 3관왕(홈런·타점·타율) 영예도 안았다. 1982년과 84년, 86년, 87년, 90년, 93년 등 6차례 한국시리즈에 올라 33경기에서 타율 0.276, 4홈런, 22타점을 남겼다. 한국시리즈 통산타점 타이기록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6차례 모조리 쓴잔을 마셨다.
지난해 말 9년 만에 한국에 돌아와 SK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한 그는 삼성의 파란 유니폼 대신 SK의 빨간 유니폼을 입고 지독한 우승 갈증을 풀었다. 그는 “선수 때 못 이룬 꿈을 지도자로서 이뤄 기쁘다”며 감격해 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우승보다 월드시리즈 정상에 올랐을 때 감격이 더 컸다고 귀띔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우승했기 때문일 것”이란다.
지난 6월 ‘팬티쇼’를 펼치며 야구 붐 조성에 기여했던 이 코치는 “좋은 이벤트라고 생각하고 기회가 오면 또 나서겠다”고 했다. 이어 “(명승부를 펼친) 이번 한국시리즈를 계기로 한국 프로야구가 더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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