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OB(두산의 전신)에 진갑용(32·삼성)이 입단했다. 주위에서는 그를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대형포수로 평가했다. 하지만, 진갑용은 프로 입단 후 이렇다할 활약을 보여주지 못했다. 결국 1999년 홍성흔(30)이 입단한 뒤 백업으로 밀리자, 그는 김경문 배터리 코치(현 두산 감독)를 만나 직접 트레이드 얘기를 꺼냈다. 김경문 감독은 당시를 회상하며 “진갑용은 능력이 탁월했지만 다소 게을렀다. 하지만 신인 홍성흔은 배우려는 열정과 패기가 대단했다”고 말한 바 있다. 진갑용은 이후 삼성으로 이적했다.
8년여 세월이 흐른 현재. 이번에는 홍성흔이 “포수로 뛸 수 있는 팀에 가고 싶다”며 김경문 감독을 찾아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그의 트레이드 요구는 팀후배 채상병(28)의 존재와 무관치 않다. 2003년말 삼각트레이드를 통해 두산에 둥지를 튼 채상병은 그동안 군복무 등으로 활약이 미미하다가 올해 홍성흔이 부진한 틈을 타 두각을 나타냈다. 최근 들어 팔꿈치 부상 여파로 도루저지율과 송구능력이 현격히 떨어지며 김 감독으로부터 외야수 혹은 1루수 전향을 권고받던 홍성흔에게 채상병의 급부상은 치명타가 됐다. 이미 두산이나 김 감독은 내년 팀주전포수로 채상병을 머릿속에 그리며, ‘포수 홍성흔’에 대한 기대치를 서서히 지워가고 있다. 홍성흔은 포수로 재기하기 위해 모교인 경희대에서 땀을 흘리고 있지만 말이다.
김경문 감독은 14일 미국 출국 전 “주전으로 뛰어야 할 선수가 백업으로 있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고, 또 주전으로 100경기 이상 뛸 수 없다면 주전포수라고 할 수도 없지 않느냐”면서 “성흔이가 원하는 쪽으로 알아보겠다”고 했다. 신인시절부터 애정을 보였던 홍성흔을 떠나보낼 마음의 준비가 된 듯한 모습이다. 진갑용에서 홍성흔으로 이어진 트레이드 자청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그런 게 프로세계 아니겠느냐”고 했다. 돌고 도는 게 인생사만은 아닌 듯 싶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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