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한국시각) 뉴욕 셰이 스타디움에서 열린 시애틀 매리너스와 뉴욕 메츠의 인터리그 경기. 0-0이던 2회초 2사 만루에서 육중한 몸매의 시애틀 선발 투수 펠릭스 에르난데스(22)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가 상대해야 할 뉴욕 메츠 좌완 투수는 같은 베네수엘라 출신의 요한 산타나(29). 초구로 93마일(150㎞) 직구가 날아오자 그는 냅다 방망이를 휘둘렀고, 타구는 쭉쭉 뻗어 오른쪽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그의 메이저리그 데뷔 첫 홈런이 그랜드슬램이 되는 순간이었다. 에르난데스의 만루홈런은 아메리칸리그 투수로는 1971년 스티브 더닝(클리블랜드) 이후 37년 만이고, 시애틀 투수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에르난데스는 승리투수가 되지는 못했다. 5회초 2사 3루에서 라몬 카스트로와 상대하면서 초구에 폭투를 던진 뒤 3루주자를 막기 위해 홈플레이트 커버에 들어갔다가 그만 왼쪽 발목을 접질렸다. 아웃카운트 하나면 승리투수 요건을 갖추는 터라 더 던져보려 했지만 통증이 너무 심했다. 결국, 에르난데스는 5-1로 앞선 상황에서 마운드를 내려왔다. 4⅔이닝 2안타 1실점. 최근 이어오던 41경기 연속 선발 5이닝 이상 투구 기록은 마침표를 찍었고, 부상 때문에 생애 첫 아메리칸리그 올스타 투수 선정도 가물가물해졌다. 불과 몇시간 안에 천당과 지옥을 경험한 에르난데스였다. 시애틀은 에르난데스의 만루포 덕에 5-2로 승리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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