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1. 태어난 지 50일쯤 되는 윤서는 아빠 얼굴을 몇 시간밖에 보지 못했다. 그래도 거의 매일 전화기를 통해 목소리는 듣는다. 칭얼대는 소리만으로도 아빠는 “소리가 우렁차네. 큰 사람이 될 거야”라며 기뻐한다. 윤서와 똑닮은 아빠는 지난 7일 일본전에 생전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마운드에 섰다. 비록 홈런으로 호된 신고식을 했지만, 그게 실력의 전부는 아니다. 이재우(두산)의 아내이자 전 배구대표팀 선수였던 이영주는 “홈런을 맞던, 삼진으로 처리하던 남편은 내게 늘 최고의 투수죠. 처음 대표팀에 뽑혔을때 기뻐하던 그 마음가짐 그대로 2라운드에선 잘 던져줄 걸로 믿어요”라고 기대했다.
#2. 2008 베이징올림픽 사령탑이었던 김경문 두산 감독. 이젠 텔레비전을 보면서 대표팀을 응원한다. 이승엽을 대신할 새로운 국가대표 4번타자 김태균(한화)과 신고선수에서 타격왕으로 거듭난 김현수(두산)가 국제무대에서 펄펄 나는 것을 보면 흐뭇하기만 하다. 그는 “큰 점수차로 지기도 했지만 어린 선수들이 여유가 생기는게 보이더라”면서 “앞으로 다른 국제대회에서도 잘하겠구나 싶다”고 말했다. 1라운드 마지막 경기에서 잘했으니 이 분위기를 2라운드까지 이어가 초대 대회때보다 더 나은 성적이 났으면 좋겠단다.
#3. 일본에 콜드게임패를 당한 다음날, 박찬호(필라델피아)는 멀리 미국에서 “거 시원하게 졌다. 괜찮다”며 후배들을 다독였다. 일본에 통쾌한 복수극을 펼쳤을 때는 “(봉)중근이와 (김)태균이가 내게 준 감동의 선물은 아주 고맙고 의미가 있다”며 기뻐했다. 고개 숙인 김광현(SK)에게는 “큰 상처를 얻은 만큼 큰 교훈의 경험이 될 것”이라며 토닥였다. 대표팀 은퇴발표장에서 눈물짓던 박찬호는 “이제 김인식 감독님께 미안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후배들이 자랑스럽기만 하다.
9일 한일전이 끝난 뒤 양팀 감독들은 하나같이 “이것이 야구다”고 했다. 콜드게임패의 굴욕을 안긴 상대팀을 이틀 만에 영봉으로 누를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야구인 것이다. 가족과 스승, 그리고 태극마크를 달았던 선배들은 물론 모든 야구팬들이 대표팀을 응원하고 있다. 야구의 심장부, 미국 본토를 떠들썩하게 만들 ‘대한민국 야구’를 기대해 본다.
김양희 기자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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