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이 지난 7일 일본전에서 2회말 3점홈런을 허용한 뒤 허탈해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닷새 동안 펼쳐진 세계야구클래식(WBC) 아시아라운드. 일방적인 경기가 이어지며 지루함의 정점을 찍다가 마지막날에는 투수전의 진검승부를 보여주는 잭팟을 터뜨렸다. 우리를 미소짓게 했거나 찌푸리게 만들었던 순간들을 뽑아봤다.
■ 7일 일본전 1회말 김태균의 홈런 0-3으로 뒤진 가운데 터진 김태균(한화)의 도쿄돔 좌측 광고판을 맞히는 큼지막한 홈런은 가슴속까지 후련함을 던져줬다. 그가 왜 어릴 적부터 ‘포스트 이승엽’이라고 불렸는지 잘 설명해주는 대목이었다. 한국은 두차례 일본전에서 총 3점을 뽑았는데, 모두 김태균의 손에서 나왔다는 점은 주목할 만 하다.
■ 9일 일본전 1회말 봉중근의 기선제압 일본 1번타자 이치로가 타석에 들어서자 도쿄돔은 플래시세례로 파도타기를 했다. 이때, 마운드 위에 있던 봉중근(LG)은 주심에게 다가가 애교넘치는 표정으로 항의를 했다. 불필요한 어필처럼 보였지만, 기선제압의 의도가 짙게 깔려있었다. 봉중근은 이후 힘(직구)으로 이치로 등을 밀어붙이면서 일본타선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 9일 일본전 1회말 이종욱의 호수비 봉중근의 2구째를 두들긴 2번 타자 나카지마의 타구는 중견수 이종욱(두산) 앞으로 총알같이 날아갔다. 이종욱은 앞으로 전력질주해 넘어지면서 공을 낚아챘다. 놓쳤다면 장타로 바뀔 수 있었지만, 집중력이 좋았다. 도쿄돔은 천장이 하얗기 때문에 뜬공처리가 다소 힘든데도 이종욱, 김현수(두산) 등 외야수들 수비는 칭찬할 만했다.
■ 7일 일본전 1회초 김광현의 슬라이더 공이 스트라이크존 밑으로 떨어지는데도 일본 타자들의 방망이는 쌩쌩 돌아갔다. 직구 구속이 나오지 않는 상태에서 현미경 야구에 분석당한 슬라이더는 타자들에게 딱 알맞은 먹잇감이었다. 김광현-박경완(이상 SK) 배터리는 2회부터 투구패턴을 바꿨지만 승부는 이미 기운 뒤였다.
■ 7일 일본전 4회초 이대호의 3루수비 첫 경기(6일 대만전)때는 3루수 이대호(롯데)가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타구가 3루쪽으로 흘러간 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7일 일본전서 이대호는 불안감을 그대로 노출했다. 4회초 타구도 한차례 놓쳤다. 다음날 이치로는 “아시아 팀에서 그 정도 사이즈로 3루를 지키는 것은 본 적이 없다”고 비꼬았고, 김인식 감독은 중국전부터 이범호(한화)를 3루수로 기용했다.
■ 8일 중국전 5회말 박경완 주루플레이 대회 전 발야구를 기치로 내세웠던 한국팀이지만, 망신살이 뻗쳤다. 단타성 타구로 2루까지 가다 횡사하고, 견제사에 당하기 일쑤. 중국전 5회말 정근우(SK) 안타때 박경완이 2루에서 3루를 거쳐 홈으로 뛰어들다가 3루 류중일 코치와 부딪혀 자동아웃되는 장면은 실소까지 자아냈다.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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