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야구·MLB

세대를 넘어 홈런

등록 2009-03-31 21:28

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
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

#1. 할아버지와 손녀는 같은 개띠다. 60살이나 차이가 난다. 손녀는 세상의 사물을 눈에 익히기 시작할 무렵부터 야구를 봤다. 자연스레 주변 사람들이 야구를 보며 박수를 치면 따라 했다. 9개월이 지났을 땐, 야구 응원구호가 나오면 저절로 박수를 칠 정도가 됐다. “엄마”, “아빠”라는 말보다 먼저 한 행동이었다. 신문에 야구 관련 사진이 있으면 손가락으로 짚으며 어설픈 발음으로 “야구”라며 좋아했다. 할아버지는 그런 손녀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개띠’라는 공통분모 외에 그들은 6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야구’라는 공통사를 갖게 됐다.

#2. 아빠는 갓 태어난 아이에게 ‘석민’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기아 윤석민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지금에야 윤석민이 국가대표 오른손 투수가 됐지만, 2007년에는 낮은 평균자책에도 시즌 최다패의 멍에를 진 선수였다. 아내는 그런 그의 불운이 옮을까 ‘석민’이란 이름을 꺼려했지만, 아빠의 고집은 셌다. 그는 말했다. “(아들이) 커가면서 몇번쯤은 감당하기 힘든 불운과 어려움에 맞닥뜨릴 것을 알지만,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여줄 멘토가 돼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런 사람이 윤석민 선수라고 믿는다”고. 그는 소박한 꿈을 꾼다. 십몇년 뒤, 아침에 눈을 떠서 아들과 함께 목욕탕에 들렀다가 야구장에 가서 “윤석민!”을 외치는 것이다.

첫번째 사연은 지인의 이야기고, 두번째 사연은 한 독자가 보내준 기아팬의 이야기다. 다른 시대를 살았고 다른 문화를 즐기지만, 그들의 마음은 야구로 통한다. 이미 세계야구클래식(WBC)을 통해 하나가 되었을 그들이다. 한 이탈리아 친구는 언젠가 “난 태어날 때부터 유벤투스팬이었다”고 자랑했다. 유벤투스 광팬이었던 아버지가 자신이 태어날 때 유벤투스 응원 목도리로 자신의 몸을 감쌌기 때문이란다. 그 친구의 말을 들으며 새삼 부러운 느낌도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할아버지와 손녀. 세대를 초월해 몸안에 서서히 스며드는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것. 그보다 신나는 일이 또 있을까. 프로야구는 오는 4일 개막한다.

김양희 기자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1.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2.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3.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4.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5.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