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 영국 어학연수 시절 만난 한 일본인 친구가 있다. 그는 중·고등학교 내내 야구를 했다. 포지션은 투수로, 직구 구속은 135㎞ 안팎이었다고 한다. 고교 졸업 뒤 그는 일본 사학 명문인 와세다대 영문학과에 입학했다. 체육특기생이 아니라, 다른 수험생들과 똑같이 시험을 보고 들어갔다. 한국 현실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재일동포 최일언 에스케이 투수 코치에게서 더 자세한 얘기를 들었다. 일본 중·고등학교는 보통 6교시 수업을 한다. 운동선수라도 수업은 반드시 들어가야만 한다. 오후 2~3시께 수업이 끝나면 동아리 활동이 이뤄진다. 야구부는 팀 개념이 아닌 동아리 개념으로, 일반 학생들도 자유롭게 참가할 수 있다. 전국 4200여개 고교에서 야구를 하지만, 한국처럼 스파르타식으로 ‘교육’ 없이 ‘훈련’만 하는 야구부는 거의 없다. 학교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야구 선수 이외의 다양한 길이 열려 있다는 뜻을 내포한다. 일본에서는 서울대와 같은 국립대에 시험을 치고 들어가 졸업 뒤 프로야구에 뛰어든 선수도 여럿 있었다고 한다. 최 코치는 “고등학교 때 나는 아침 일찍 학교에 나가 운동장을 정리한 뒤 수업을 모두 듣고 보통 오후 4시부터 훈련을 했다”며 “그래서 베이스 러닝 훈련을 할 때는 주위가 깜깜하곤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온 종일 훈련한다고 그만큼 실력이 느는 것은 아니고 수업 참가를 통해 기본적 소양을 쌓으면서도 얼마든지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며 “현재 한국 중·고교 시스템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시모노세키상고 시절 일본 최고 권위의 대회인 고시엔 본선 2회전까지 팀 에이스로 마운드에 섰던 그는, 부기 1급과 정보처리 2급 자격증을 갖고 있다. 모두 고등학교 때 딴 것이다. 오는 17일이면 2010 신인선수 지명회의가 열린다.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은 뽑을 선수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야구 실력이 나날이 하향 평준화되고 있다고도 한다. 아마추어 관계자들은 초등학교 야구부 인원이 점점 줄어든다고 걱정이다. 하지만 학교 밖을 보면 방과후 활동으로 이뤄지는 리틀 야구부원들 수는 몇 년 사이 2~3배 늘었다. 프로야구단이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이들을 상대로 여는 야구스쿨에는 한꺼번에 몇 백명씩 몰린다. 왜일까. 야구 관계자뿐만 아니라 정부 교육 관계자도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김양희 기자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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