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퇴물→월드시리즈 MVP
양키스 9년만에 우승
양키스 9년만에 우승
“무슨 말을 해도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다. 하지만 ‘마쓰이, 미국에 가서 잘됐다’는 말이 나오도록 하겠다.”
마쓰이 히데키는 2002년 말, 태평양을 건너기 직전 이런 말을 남겼다. 그리고 7년이 흐른 2009년 11월5일. 서른다섯 살의 노장 마쓰이는 마침내 이 약속을 지켰다.
5일 미국 뉴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미국프로야구 월드시리즈(7전4선승제) 6차전. 마쓰이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스코어보드의 양키스 쪽 숫자가 올라갔다. 그의 손으로 만든 점수는 무려 여섯점. 4타수 3안타(1홈런)를 치며, 팀의 7점 가운데 6점을 혼자 뽑아냈고, 월드시리즈 마지막 순간의 주인공이 됐다. 6타점은 1960년 보비 리처드슨(양키스) 이후 49년 만에 나온 월드시리즈 한 경기 최다타점 타이기록이다.
양키스는 이날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7-3으로 꺾고 시리즈 전적 4승2패로 정상에 올랐다. 역대 최다인 통산 27번째 월드시리즈 우승이며 2000년 이후 9년 만에 맛보는 정상이다. 마쓰이는 이번 시리즈에서 13타수 8안타(0.615), 3홈런 8타점으로 아시아인 최초로 월드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등극했다. 반면 2년 연속 우승에 도전했던 필리스는 1950년 양키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4전 전패한 데 이어 59년 만의 재대결에서 또 고개를 떨궜다.
고교 시절부터 ‘괴물 타자’로 이름을 날린 마쓰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10년 동안 뛰며 7년 연속 30홈런 이상을 기록하는 등 부동의 4번 타자로 일본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2002년 시즌이 끝난 뒤 ‘아메리칸드림’을 찾으러 가자, 일본 팬들의 기대와 아쉬움이 교차했다.
2003년부터 세 시즌 연속 100타점 이상을 올린 마쓰이는 2005년 말 박찬호에 이어 역대 아시아 선수로는 두 번째로 많은 4년간 5200만달러(613억원)의 연봉 대박을 터뜨렸다. 하지만 이후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퇴물 선수’로 전락했다. 재기가 불투명해 보이던 그는 올 시즌 기적같이 다시 일어섰다. 정규리그 142경기에서 타율 0.274, 28홈런, 90타점으로 전성기 모습을 되찾았고, 마침내 월드시리즈 마지막 순간에 ‘왕별’로 떠올랐다.
한편 미국 진출 16시즌 만에 처음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은 박찬호(36)는 6회말 1사 1루에서 네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 1이닝을 무실점으로 잘 막았다. 박찬호는 2, 4, 5, 6차전에 등판해 3⅓이닝 동안 2피안타 3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좋은 인상을 남겼지만 팀이 준우승에 머물러 빛이 바랬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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