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지난 12일 일본으로부터 우울한 소식이 날아들었다. 오릭스 버펄로스 박찬호(38)가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된 것이다. 그렇다고 같은 팀의 이승엽(35)처럼 성적 부진으로 인한 2군 강등은 아니었다. 팀 사정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오릭스는 17일부터 인터리그에 들어갔다. 퍼시픽리그와 센트럴리그가 약 한달 동안 맞붙는 인터리그는 2연전이 많아 중간에 휴식일이 꽤 된다. 한국 프로야구의 9월을 생각하면 된다. 우천 취소된 경기와 잔여 경기 일정이 뒤늦게 짜이면서 2연전이 열리고 팀별로 2~3일 동안 경기가 없을 때도 있다. 이때가 되면 각 팀은 1~4선발 위주로 경기를 꾸려가고 필요할 경우 투수보다는 야수를 1군 엔트리에 많이 올린다. 선발투수는 하루 던지면 보통 4일은 쉬기 때문이다. 팀 성적이 바닥인 오릭스도 이런 점 때문에 박찬호를 뺐을 가능성이 짙다. 가뜩이나 공격력이 약한 탓에 선발투수보다는 대타 요원 1명이 더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도 박찬호의 1군 엔트리 제외는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박찬호도 공식 누리집에 남긴 글에서 말했듯이, 잘 던졌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박찬호는 시즌 초반 3연속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 이하)를 기록했지만 이후 다소 불안한 투구내용을 보여줬다. 특히 11일 소프트뱅크와의 원정경기에서는 팀이 3-1로 역전시킨 6회 곧바로 3점을 내줘 승리를 지키지 못했다. 박찬호의 1군 엔트리 제외는 그의 현 위치를 말해준다. 필요할 때 언제든 교체 대상이 되는 5선발급 투수인 것이다.
박찬호는 22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에 선발등판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날도 성적을 내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오릭스는 23일부터 6월3일까지 띄엄띄엄 총 4일의 휴일이 있다. 선발투수가 4명 이상은 필요 없다. 오카다 아키노부 오릭스 감독에게 확실한 인상을 주는 투구가 아니면 박찬호는 또다시 ‘강제적인’ 열흘간의 휴식을 받을 게 뻔하다. 인터리그가 끝날 때까지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
외국인 선수라는 말 자체가 무의미한 미국 야구와 달리 일본 야구는 외국인 선수 출전 제한을 두고 있다. 소프트뱅크에서 1년 동안 뛰다가 국내로 돌아온 이범호(KIA)는 “일본에서 외국인 선수에게는 기회가 그리 많지 않다. 당장 주어진 한 타석에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고 회상했다.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인 최다승 기록(124승)을 올렸다고 하나 박찬호도 일본에서는 그저 한 명의 ‘외국인 선수’일 뿐이다. 이름값이 아닌 실력으로만 평가받는 외국인 선수 말이다.
박찬호는 누리집에서 “초심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1994년 메이저리그 데뷔 첫해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는 어려울 수도 있다. 일본행은 그가 선택한 길이다. “더 준비해서 다시 시작하겠다”는 약속을 마운드 위에서 보여주기를 바란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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