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조카 녀석이 2주 전에 에스케이(SK) 유소년 야구클럽 선수 테스트를 받았다. 녀석은 테스트 전 꽤 자신만만해했다. 이유가 있었다. 1년 반 동안 미국 생활을 하면서 동네클럽 야구선수로 뛰었다. 귀국 직전에는 결승전에서 마무리 투수로 나가 경기를 매조지하며 우승도 맛봤다.
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맞은 테스트 시간. 아뿔싸! 조카는 연방 헛스윙을 해댔다. 공을 던지는 것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수비에서도 쩔쩔맸다. 반면 같이 테스트를 본 아이들은 프로 같은 모습을 보였다. 조카는 결국 눈물을 글썽였다. 미국에서 나름 영재 소리를 들었던 그는 순간 낙오자의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테스트 결과는 더욱 비참했다. 58명 참가 선수 중 58등. 테스트 중간에 그만둔 선수보다 점수가 낮았다. 조카는 자조적으로 말했다. “애들 모두 야구 천재인가봐요.” 테스트 때 함께했던 남편도 “애들 실력이 생각 외로 정말 좋았다”며 혀를 내둘렀다. 학교 소속의 야구부 선수들도 아닌데 실력이 출중하다 보니 새삼 놀란 눈치였다. 리틀야구단에서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결과라 하겠다. 조카도 미국에서 1주일에 두차례 야구 연습과 경기를 했는데 한국 리틀야구단 선수들을 뛰어넘지는 못했다.
현재 전국에 퍼져 있는 리틀야구단 수는 모두 118개. 초등학교 야구부 수(98개)를 이미 넘어섰다. 2006년 20개 팀밖에 없었는데, 5년 사이에 5배 이상 늘었다. 리틀야구단에 정식 등록된 선수만 2300명이 넘는다. 국내 구단 중 에스케이가 유일하게 운영하는 유소년 클럽 등록 선수만 해도 한달 800여명이다.
앞으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리틀야구단 및 유소년 클럽은 중학교 1학년 때까지만 참여가 가능하다. 아이들은 학교 야구부에 들어가 엘리트 체육의 길로 들어설지, 그냥 야구를 그만두고 공부에만 전념할지를 택해야만 한다. 15살 미만(U-15), 18살 미만(U-18) 등 청소년 야구 클럽이 없는 우리나라 현실상 어쩔 수가 없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학교 내 스포츠 클럽이 발달해 공부를 겸해 취미생활로 야구를 더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아직까지는 길이 없다. 청소년 야구 클럽 창단이 절실한 이유다.
조카는 유소년 클럽에 등록해 일요일마다 다른 동료들과 야구를 한다. 그가 야구를 할 수 있는 시기도 이제 2년밖에 남지 않았다. 2년 후면 글러브와 야구 방망이를 내려놓아야만 한다. 최근 조카를 보면 영국 어학연수 시절 만난 한 일본인 친구가 생각난다. 그는 고등학교 때까지 야구를 했지만 일본 명문 사립대 와세다대학교 영문과에 진학했다. 물론 특기생이 아닌 일반학생 지망이었다. 지금도 거뜬히 130㎞의 공을 뿌리는 그는 “공부하면서 갑갑할 때 야구를 할 수 있어 좋았다”고 회상한다. 우리나라도 올해부터 고교 주말리그를 운영하며 변화를 꾀하고는 있다. 하지만 리틀야구 붐이 일고 있는 현 시점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중·고등학교에 야구 클럽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 아닐까.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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