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늬 신들렸나.”
아버지도 놀란 눈치다. 1군에서 포수 마스크를 처음 쓴 뒤 팀은 4연승을 달렸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듯 신기한 일의 연속이다. 2002년 처음 프로야구 선수가 된 뒤 10년 만에 1군 엔트리에 올라 선발 출전까지 한 에스케이 포수 허웅(28) 얘기다.
어린 시절 그의 놀이터는 사직구장이었다. 어머니가 사직구장에서 매점을 했다. 관중에게 우동을 나르며 힐끔힐끔 그라운드를 쳐다봤다. 자연스레 야구 선수가 됐고, 큰 몸집 탓에 포수의 길로 접어들었다. 하지만 아뿔싸! 중학교 졸업하면서 성장이 멈췄다. 1m75의 작은 키. 투수들의 공을 받아야 하는 특성상 포수는 몸집이 커야 하는데 작은 몸은 그의 단점이 됐다.
2002년 신인지명에서 현대 유니콘스에 2차 18번으로 지명됐다. 하지만 1군 출전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2006년 현역으로 입대했고 현대에 위기가 닥치면서 군 복무 도중 실업자가 됐다. 군 제대 후 경남 김해에 ‘와바와바’라는 이름의 호프집을 냈다. 1년 가까이 맥주잔을 나르고, 주방에서 안주를 만들었다. 워낙 사교성이 좋은 탓에(?) 지인들에게 공짜로 퍼주는 게 많아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저녁이 되면 롯데 유니폼을 입은 손님들이 맥주를 마시면서 야구 경기를 시청했다. ‘나도 프로야구 선수였는데….’ 브라운관 속 학교 선후배들 활약에 야구가 다시 하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댔다. 정말 죽기 전에 단 한번만이라도 1군 무대에 서보고 싶었다.
1년 후 집 구석에 처박아뒀던 미트를 다시 꼈다. 모교인 부산고에서 까마득한 후배들과 함께 훈련을 했다. 실전 감각은 주말 사회인 야구에서 이어 갔다. 조기 축구도 뛰었다. 일본 독립리그에도 8개월가량 있었다. 포수로선 작은 몸집을 보완하기 위해 미트질을 연구하고 빠른 몸동작을 익혔다. 2009년 말에는 에스케이 금광옥 원정기록원의 소개로 김성근 감독 앞에서 테스트를 받았고, 2010년 신고선수로 프로야구에 돌아왔다.
기회는 느닷없이 찾아왔다. 주전 포수 박경완이 수술하고, 정상호도 손가락 부상을 당했다. 최경철도 엔트리에 빠진 뒤 얼마 안 돼 1군에서 뛸 수 없었다. 7월29일. 허웅은 1군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데뷔 10년 만이었다. 30일 대전 한화전에선 처음 경기에 출전했고, 4일 문학 엘지전에서는 선발 포수로 뛰었다. 데뷔 첫 안타 및 첫 타점도 기록했다. 그는 “지난 열흘 동안 마치 꿈을 꾼 것 같다”고 했다. 아직도 에스케이 팬들이 “허웅! 허웅!”을 외치면 그의 가슴은 쿵쾅쿵쾅 뛴다.
9일 그는 난생처음 잠실구장 그라운드를 밟았다. 다음주엔 그의 꿈이 시작된 곳, 사직구장에 간다. 평소 직장에서 안 좋은 눈을 찡그리며 휴대폰 디엠비(DMB)로 아들 활약을 지켜보는 아버지께 직접 그의 야구를 보여드릴 수 있다는 게 제일 신난다. “정말 모든 소원이 이뤄진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정말 최선을 다할 겁니다.” 허웅은 오늘도 꿈속을 거닐 듯 그렇게 그라운드로 나선다.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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