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바꿨다고 성적 안좋다고 집단행동 나서
SNS 동원 등 조직화되고 여성팬으로 확산
SNS 동원 등 조직화되고 여성팬으로 확산
18일 밤 인천 문학구장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에스케이(SK)와 엘지(LG) 팬들이 동시에 집단행동을 했다. 에스케이 팬들은 김성근 감독의 갑작스런 경질에 분노가 폭발했고, 엘지 팬들은 팀의 성적 부진에 거세게 항의했다.
프로야구 30년 동안 팬들의 집단행동은 여러차례 있었다.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성적이 신통치 않으면 야구장 출입문을 막아서고 감독한테 ‘청문회’를 요구하는 일은 심심치 않게 있었다. 프로야구 초창기 엠비시(MBC) 청룡 김동엽 감독은 사고로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다니면서도 팬들의 청문 요구에 당당하게 맞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86년 대구구장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3차전 때는 승부에 불만을 품은 일부 삼성 팬들이 집단으로 해태 구단 버스에 불을 지른 일도 있었다.
그런데 같은 날 두 구장에서 집단행동이 벌어진 것은 이례적이다. 문학에선 김성근 감독의 경질에 항의하는 팬들이 외야석에 모여 ‘SK, 감독님께 무릎 꿇고 백번 빌어라’, ‘삼가 인천야구의 명복을 빕니다’ 등의 펼침막을 들고 ‘김성근’을 연호했다. 경기가 끝나자 수백명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마운드 위에서 에스케이 유니폼을 불태우기도 했다.
팬들은 경찰관과 소방관이 출동하자 그제서야 그라운드를 떠났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경기장 밖에서 원정경기를 위해 부산으로 이동하려는 선수단 버스를 가로막고 시위를 계속했다. 이만수 신임 감독에게는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잠실구장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엘지가 두산에 3―5로 패한 뒤 흥분한 엘지 팬 500여명이 중앙 출입문 앞에서 박종훈 감독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선수단은 역시 대구 원정경기를 위해 구단 버스에 타야했지만 버스를 가로막은 팬들에게 ‘굴복’했다. 박종훈 감독이 확성기를 들고 팬들에게 사과했고, 주장 박용택도 머리를 숙였다.
팬들의 집단행동 양상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과거엔 우발적 행동이었다면 지금은 조직적이고 계획적이다. 엘지 팬들은 14일 밤 롯데전 패배 뒤 같은 시위를 벌였지만 다은날 경기가 없던 선수단은 개별적으로 다른 문을 이용해 빠져나갔다. 그러자 팬들은 원정경기 이동일을 골라 18일 밤 다시 모인 것이다.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에스케이 팬들도 같은 방법으로 18일 낮 구단의 김성근 감독 경질 발표 직후 이날 저녁 경기에 대규모로 모일 수 있었다.
구단에 대한 조직적 대응은 이번 뿐이 아니다. 지난해 일부 롯데팬은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경질설에 항의해 신문광고를 냈고, 최근에도 넥센팬들이 엘지와의 선수의 트레이드에 항의하는 신문광고를 냈다.
과거와 달리 여성 팬들이 많아졌다는 점도 특징이다. 잠실 시위 땐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고, 문학 난동 때도 젊은 여성들이 그라운드에 난입해 유니폼 방화에 동참했다.
한 구단 관계자는 “과거 팬들의 집단행동이 극성팬 위주였다면 지금은 여성팬까지 참여하는 등 ‘마니아’에서 ‘퍼블릭’화 하고 있다”며 “관중 600만 시대에 프로야구 일부 팬들이 자칫 훌리건처럼 악성 팬으로 변질될 우려도 있어 걱정스럽다”고 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