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시리즈 투수운용 빛나…삼성 ‘트리플크라운’ 견인
초보감독 딱지 떼고 “이제는 WBC 도전해 우승할 차례”
초보감독 딱지 떼고 “이제는 WBC 도전해 우승할 차례”
2011년 1월 말. 전지훈련을 하던 괌에 한바탕 비가 쏟아진 뒤 쌍무지개가 떴다. 휴식일 골프를 치던 류중일(48) 삼성 감독도 봤다. 생애 처음 눈앞에 또렷하게 펼쳐진 광채. 류 감독은 속으로 미소지었다.‘아무래도 올해 기분좋은 일이 생기겠는걸…’
쌍무지개 기운을 받아서일까. 류 감독은 프로 사령탑 데뷔 해에 ‘화려한 역사’를 만들었다. 프로선수 시절 우승과 연을 맺지 못했지만, 감독 첫해에 정규리그와 한국시리즈에 이어 29일 아시아시리즈까지 제패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아시아시리즈에 나섰던 선동열 전 삼성 감독(2005·06년), 김성근 전 에스케이 감독(07·08년)이 오르지 못했던 고지를 초보 사령탑이 넘어섰다. 일본 스포츠 전문지 <스포츠호치>는 “왕자가 왕을 이긴 하극상”이라고 표현했다. 아시아의 ‘맏형’을 자부했던 일본 야구가 느끼는 충격을 반영한다. 팬들이 장난스럽게 지어준 ‘야통’(야구대통령) 별명도 부끄럽지 않게 됐다.
류 감독은 한결같은 ‘형님 리더십’을 보여줬다. 선수 13년, 코치 11년 등 24년 동안 삼성에서만 생활한 것이 밑바탕이 돼 스스럼없이 소통한다. 한 방송 해설위원은 “코치 때나 감독 때나 변한 게 하나도 없다. 한결같으니 선수들도 믿고 따랐고 이것이 긍정적 에너지가 됐다”고 평했다. ‘소통의 야구’는 야구계의 인기어가 됐고, 류 감독의 강렬한 데뷔전 성적은 다른 구단의 사령탑 세대교체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번 2011 아시아시리즈에서는 초보와 거리가 먼 노련미가 돋보였다. 매티스와 저마노, 차우찬, 윤성환, 안지만 등 주축 투수들 절반이 빠진 상황에서 버릴 경기는 과감히 버렸다. 예선 때 소프트뱅크에 0-9로 대패했어도 차분했다. 결승 진출만 하면 됐기 때문이다.
왼손 선발 장원삼을 예선 첫 호주 퍼스 히트전과 결승전에 투입한 것은 한정된 선발 자원 안에서 최상의 결과를 얻어낸 영리한 작전이었다. 결승전 1회 수비 도중 다친 박한이 대신 신인 정형식을 투입하고, 부상당한 진갑용 대신 어깨가 좋은 이정식에게 선발 포수 마스크를 씌운 것도 소프트뱅크의 기동력을 봉쇄하는 용병술이었다.
류 감독은 국가대표팀 사령탑 욕심도 숨기지 않는다. 그는 “한국 야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지난해 광저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승했다. 이제는 세계야구클래식(WBC)에서 우승할 차례”라며 “기회가 닿는다면 최고 선수들을 데리고 세계 정상에 도전해보고 싶다”고 했다. 야구 대표팀 감독은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 감독이 맡는다. 때문에 2013년 세계야구클래식 감독을 하려면 내년 시즌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해야 한다. 류 감독은 한국시리즈 2연패 모드로 이미 들어갔는지도 모른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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