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서 출신의 김주현(왼쪽부터) 시엠에스(CMS) 감독 겸 선수, 초등학교 교사인 리얼베이스볼의 강정희, 메이크업 아티스트 떳다볼의 모
은진, 제빵사인 나인빅스 이정원 선수.
낯선 시선속 마니아들 활약
여자연맹 등록팀만 25개
시속80㎞ 투구·만점 배팅
주말시합 위해 근무도 조정
“할수록 어렵지만 짜릿해”
여자연맹 등록팀만 25개
시속80㎞ 투구·만점 배팅
주말시합 위해 근무도 조정
“할수록 어렵지만 짜릿해”
“신경 안 써요. 우린 개척자니까요.”
애초부터 한국은 여자스포츠 취약지역이지만 야구는 더 심하다. 마스크와 헬멧 쓰고 알루미늄 배트를 든 여자 선수들을 낯설게 본다. 하긴 전국의 100~120개 리틀야구단에 여자 선수가 있는 팀은 손에 꼽힌다. 그것도 최근부터 여자선수한테 문호를 개방했다. 이런 상황에서 2007년 한국여자야구연맹이 만들어진 게 기적이랄까. 연맹 관계자는 “아직은 초기 단계”라고 했다.
그러나 절망과 희망은 동전의 양면이다. 올 시즌 프로야구 인기를 업으면서 12월 현재 연맹 등록 팀은 25개에 이르고 선수는 540명이다. 아직 등록하지 않은 팀을 포함하면 35개 팀에 이른다고 한다. 주로 주말에 10만~20만원의 사용료를 내 경기장을 빌려 어렵게 연습을 하지만, 지역별 대회와 전국대회 등 있을 건 다 있다. 2010년 베네수엘라 세계여자야구월드컵에선 10개 팀 가운데 9위를 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새싹을 틔우기 위한 몸부림은 마니아들에 의해 이뤄진다. 서울지역 13개 팀 가운데 맹렬한 활동을 하는 4명의 선수는 한국 여자야구의 현실과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 카레이서 출신 감독님 김주현 시엠에스(CMS)팀의 감독 겸 선수인 김주현(41)은 카레이서 출신이다. 1995년에는 남자 선수들을 제치고 종합 챔피언에 오르기도 했다. 서른살에 핸들을 놓은 뒤 5년 만에 다시 빠져든 것이 여자야구다. “원래 동전 넣고 방망이로 치는 자동식 야구를 좋아했어요.” 운동신경이 어디 갈까? 3년 만에 국가대표, 그것도 주장이 돼 2008년 일본과 2010년 베네수엘라에서 열린 세계여자야구월드컵에 출전해 주전 1루수로 뛰었다. 그는 “9회말 투아웃까지 긴장의 끈을 늦출 수 없는 게 매력이다. 야구 하는 주말에 결혼식에 오라는 사람이 제일 싫다”며 웃음지었다. 감독을 맡고 있는 ‘시엠에스’는 센트럴메디컬서비스(CMS)라는 제약회사가 스폰서이고, 김 감독은 이 회사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 시속 94㎞ 강속구 에이스 모은진 서울지역 떳다볼팀의 모은진(32)은 투수다. 어깨 통증 때문에 매주 물리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다. 6개월 정도 쉬어야 하는데 “자꾸 던지니까 낫질 않는다”고 한다. 고교와 대학 때 소프트볼 선수여서 남들보다는 유리했다. 2008년 시작했는데 투구 레슨을 받은 결과 구속이 시속 94㎞다. 이 정도면 웬만한 남자 사회인야구 투수를 뺨친다. 올해 1월에는 ‘떳다볼’ 소속으로 대만, 중국, 일본, 유럽 등 6개국이 참가해 홍콩에서 열린 국제대회에도 출전했다. 그는 “소프트볼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야구는 훨씬 역동적이고 매력적”이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메이크업 아티스트의 고운 손은 야구 할 때만큼은 철의 손으로 바뀐다.
■ ‘볼넷 여왕’ 초딩 선생님 강정희 리얼베이스볼팀의 강정희(26)의 별명은 ‘볼넷 여왕’. “막연히 구기 경기를 하고 싶었다”는 여왕은 2년 전 집 가까운 곳의 여자야구팀에 꽂혔다. 1m67의 큰 키에 강한 어깨로 첫 포지션으로 투수를 맡았다. 초기엔 한 이닝에 밀어내기 볼넷으로 9~10점 주는 건 다반사. 그 뒤 포수, 내야수, 외야수로 밀려났지만 결국은 피나는 노력으로 다시 투수로 돌아왔다. “인필드플라이,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경기에서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멍해져요. 야구요? 하면 할수록 어렵네요. 그게 매력이죠.”
올해 짜릿한 기억은 만루 타석에서 싹쓸이 3타점 2루타를 쳤을 때다. “외야 뜬공인데 중견수가 놓쳤어요. 그래도 기분 끝내줬어요.”
■ ‘빵 굽는 거포’ 이정원 나인빅스팀의 이정원(24)은 제빵사. 원래 프로축구 안양 엘지(LG) 팬이었는데,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한 뒤 야구에 끌렸다. 특히 롯데의 카림 가르시아와 임경완이 좋았다.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인터넷을 뒤져 직접 여자야구단에 가입했다. 주말 야구를 위해 근무를 조정하는 게 한 주의 가장 큰 일이다. 빵 만들던 손으로 야구를 하면 어떨까? “밀가루 반죽 많이 하면 근력이 좋아진다고 우리 팀 언니들이 좋아해요.” 포지션은 3루수다. 때로는 포수 마스크도 쓴다. 선수들이 가장 기피하지만 거포가 많은 포지션이다. 타순도 ‘한방’이 필요한 5번이나 6번이다. “저요? 힘 좋고 어깨도 강하죠. 발이 느려서 그라운드 홈런은 꿈도 못 꾸지만….” 그는 “동료들이 ‘이정원! 이정원’을 연호할 때 가장 짜릿하다”고 했다. 여자야구 선수를 우습게 보지 말라. 가녀린 팔에서 시속 80~90㎞의 구속이 나온다. 이 속도는 평범한 남자들도 던질 수 없다. 유니폼 입고 배트를 든 모습도 범상치 않다. 작아 보이는 체구에서 “땅~” 하는 경쾌한 금속음에 타구는 창공을 향해 쭉쭉 뻗어나간다. 찬 바람이 불어도 야구에 ‘미친’ 선수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장차 어린 선수들이 클럽이나 학원에서 자유롭게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편견과 싸우는 것을 마다않는 여전사들이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 ‘빵 굽는 거포’ 이정원 나인빅스팀의 이정원(24)은 제빵사. 원래 프로축구 안양 엘지(LG) 팬이었는데, 연고지를 서울로 이전한 뒤 야구에 끌렸다. 특히 롯데의 카림 가르시아와 임경완이 좋았다.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인터넷을 뒤져 직접 여자야구단에 가입했다. 주말 야구를 위해 근무를 조정하는 게 한 주의 가장 큰 일이다. 빵 만들던 손으로 야구를 하면 어떨까? “밀가루 반죽 많이 하면 근력이 좋아진다고 우리 팀 언니들이 좋아해요.” 포지션은 3루수다. 때로는 포수 마스크도 쓴다. 선수들이 가장 기피하지만 거포가 많은 포지션이다. 타순도 ‘한방’이 필요한 5번이나 6번이다. “저요? 힘 좋고 어깨도 강하죠. 발이 느려서 그라운드 홈런은 꿈도 못 꾸지만….” 그는 “동료들이 ‘이정원! 이정원’을 연호할 때 가장 짜릿하다”고 했다. 여자야구 선수를 우습게 보지 말라. 가녀린 팔에서 시속 80~90㎞의 구속이 나온다. 이 속도는 평범한 남자들도 던질 수 없다. 유니폼 입고 배트를 든 모습도 범상치 않다. 작아 보이는 체구에서 “땅~” 하는 경쾌한 금속음에 타구는 창공을 향해 쭉쭉 뻗어나간다. 찬 바람이 불어도 야구에 ‘미친’ 선수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장차 어린 선수들이 클럽이나 학원에서 자유롭게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편견과 싸우는 것을 마다않는 여전사들이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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