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박찬호, 미·일 거쳐 21년만에 대전구장 하례식
“미국 가기전 야구는 전쟁
이제는 승패 떠나 즐거움”
“미국 가기전 야구는 전쟁
이제는 승패 떠나 즐거움”
91년 가을. 그는 대전구장 1루 더그아웃 한 켠에 서 있었다. 순간 ‘딱’ 하는 방망이 소리와 함께 타구가 담장 밖으로 넘어갔다. 연습생 출신의 장종훈이 시즌 최다인 35호 홈런을 터뜨리는 찰나였다. 그때 생각했다. ‘나도 나중에 꼭 여기에 서야지.’ 하지만 그의 다짐은 20년이 흐른 뒤에야 이뤄졌다.
박찬호(39·한화)는 6일 대전 한밭야구장에서 열린 구단 신년 하례식에 후배 선수들과 함께 했다. 미국·일본을 거쳤지만 하례식은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었다. 다소 달뜬 마음으로 하례식을 마친 그는 “21년 만에 대전구장에 왔는데 마치 고향에 온 느낌이다. 어릴 적부터 생각하던 팀의 유니폼을 입고, 같은 유니폼을 입은 다른 선수들과 함께 있으니 이제 팀원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이어 “어릴 적에는 대전구장 관중석이 높아만 보였는데, 지금 와보니 낮은 것 같다”는 소감도 덧붙였다.
한화 선수들과는 이미 지난 3일 선수단 워크숍을 통해 첫 만남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박찬호는 자신을 부담스러워하는 후배들에게 “미국에서는 다들 나를 ‘찹(Chop;자르다는 뜻으로 불펜 투수로 등판해 팀의 위기를 끊는 역할을 했었음)’이란 별명으로 불렀다. 앞으로 ‘선배님’ 말고 ‘찹’ 혹은 ‘형’으로 불러달라”고 주문했던 터. 박찬호는 “당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몇몇 선수들이 ‘찹’으로 불렀는데, 오늘 만나니까 다시 ‘선배님’이 됐다. 앞으로 꼭 ‘선배님’ 호칭을 없애겠다”고 했다. 적게는 두 살, 많게는 스물한 살까지 나이차가 나는 후배들에게 허물없이 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박찬호는 40분 넘게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시종일관 밝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웃을 때 에너지가 참 좋은 것 같다”며 종종 농담도 했다. 그는 “미국 가기 전 나에게 야구는 목숨을 걸고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전쟁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야구를 하면서 스트레스를 더 받고는 했다”면서 “미국 생활을 통해 이기거나 지는 것은 중요치 않고, 다만 그런 과정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잘하는 모습은 물론 망가지는 모습에서도 후배들이 배우는 점이 있을 것이다. (최고참으로) 올해 한화 팀 분위기도 즐거운 쪽으로 이끌고 싶다”고 했다. 한화의 ‘즐거운 야구’를 위해 후배 류현진과 김태균을 적절히 활용(?)할 뜻도 내비쳤다.
박찬호는 “김성근 감독님이 ‘10승 이상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자신감이 많이 생겼고 부족했던 에너지도 생겨났다. 올해 안 다치고 꾸준하게 경기에 나가고 싶다”며 “투수는 포수와의 호흡이 제일 중요한데, 신경현 최승환 등과 대화를 통해서 타자들과 다른 팀에 대해 연구하겠다. 이승엽(삼성) 뿐만 아니라 다른 타자들과의 승부가 기대가 되고 또 재미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찬호는 7일 미국으로 출국해 신변을 정리한 뒤 17일부터 시작되는 애리조나 훈련캠프에 합류한다. 한화 선수단은 16일 출국한다.
한편, 이날 함께 하례식을 치른 좌완 에이스 류현진(25)은 “박찬호 선배님으로부터 몸관리 등을 배우고 싶다”며 “올 시즌 부상 없이 매 경기에 나가다 보면 윤석민(KIA), 김광현(SK)과 재밌는 투수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팀 훈련을 앞두고 짧게 머리를 자른 최고 연봉자(15억원) 김태균(30)은 “팀에 합류하니 뭔가 해야할 것 같은 책임감이 느껴진다”며 “(이)승엽형은 나이가 있으나 워낙 기술이 좋아서 홈런왕 경쟁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지지는 않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한대화 한화 감독은 “부담스런 한 해가 될 것 같은데 그런 부담감을 즐길 수 있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선수단에 전했다.
대전/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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