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구속 148㎞ 몸상태 자신
“윤석민·류현진 좋은공 던져”
“윤석민·류현진 좋은공 던져”
오랜 비행과 시차 때문인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간간이 인터뷰 질문을 되묻기도 했다. 하지만 환한 얼굴에 계속 미소가 흘렀다. “그냥 마운드에 올라 공을 던지고 싶은 생각뿐이다.” 4년간의 방황을 끝내고 비로소 안식처를 찾은 듯한 편안한 모습이었다. ‘핵잠수함’ 김병현(33)은 그렇게 총액 16억원(계약금 10억원, 연봉 5억원, 옵션 1억원)에 넥센 히어로즈 49번 선수가 됐다.
김병현은 20일 아침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귀국한 직후 인천 하얏트 리젠시 호텔에서 열린 입단식 및 기자회견에서 “1월 초 미국으로 건너가 일주일 정도 개인훈련을 했는데 예전과 달리 뭔가 허전하고 긴장감이 전혀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야구 인생에서 어떤 방향이 좋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마운드에 올라 기분 좋게 공을 던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며 넥센 입단 배경을 설명했다. 지난달 이장석 히어로즈 대표이사를 만나 저녁 식사를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얘기를 나눈 것도 한국행 결정에 도움이 됐다. 그동안 한국 복귀에 부정적인 모습을 보인 데는 “팀이나 자존심 때문이 아니라 야구에 대해서는 냉정하고 꼼꼼한 내 성격상, 내 공이 마음에 안 들었던 이유가 컸다”며 “한국에 들어오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아내와 부모님이 너무 좋아했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가 지금까지 생각을 너무 많이 했나 싶었고, 다 잘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등번호를 49번으로 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애리조나에서 공이 가장 좋았을 때 달고 있던 번호라서 구단에 요청했다”고 했다. 메이저리그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묻는 질문에도 “마지막 시즌이 될 수 있던 여러 베테랑 선수들과 함께 이룬 2001년 애리조나 월드시리즈 우승”이라고 답했다. 연거푸 끝내기 홈런을 맞는 불운도 겪었지만, 한국 선수로는 처음 경험한 월드시리즈 우승 기억은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김병현은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일으킨 손가락 욕설 파문으로 악동 이미지가 강하다. 국내에 머물 때도 잠행을 하면서 두문불출하곤 했다. 이에 대해 김병현은 “대학 2학년 때 미국으로 간 뒤 갑자기 유명해져서 적응 기간이 필요했는데 그렇지 못해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며 “이런 점은 넥센의 처지와 비슷하다. 넥센도 밖에서 들을 때는 선수 많이 팔고 주차장에서 연습한다고 들었는데, 막상 대표님을 만나 얘기하다 보니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많이 달랐다. 넥센이나 나에 대해 잘못된 편견이나 오해가 있는 것도 사실인데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시행착오도 있겠지만 한국 야구 문화에 차차 적응해 갈 것”이라고도 했다. 그동안 눈여겨본 프로야구 선수들은 “참 좋은 공을 던지는” 윤석민(KIA)과 류현진(한화)이라고 답했다.
그는 2007년 이후 소속팀 없이 떠돌이 생활을 했다. 독립리그에서도 뛰었고, 라쿠텐 소속으로 일본 2군 리그에도 있었다. 때문에 실전 경험이 가장 큰 문제다. 김병현은 “몸은 괜찮다. 일본에서도 아프지는 않았는데 7, 8월 이후 뚜렷한 이유 없이 마운드에 오를 기회가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1년 동안의 일본 생활을 통해 ‘한국에서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은 얻었다. 최고 구속도 시속 148㎞까지 끌어올렸다. 그는 “아직까지는 과거 좋았던 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타자와의 싸움에서 우위를 점하고는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며 “일본에 간 이유도 내 공을 찾으러 간 것이었다. 하지만 1군 등판 기회가 없었고, 이렇게 있다가는 내 공을 못 찾겠구나 싶어 넥센으로 왔다. 김시진 감독님 밑에서 열심히 배워서 내 공을 찾고, 정말 좋은 공을 던져서 팀에 보탬이 되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김병현은 국내에서 개인시간을 보낸 뒤 27일 출국해 미국 애리조나 훈련 캠프에 합류한다. 선발로 뛸지, 불펜으로 뛸지는 김시진 감독과 상의 후 결정한다.
인천/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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