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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범 “2군행, 선동열 부임때 미리 언질줬으면…”

등록 2012-04-01 20:20수정 2012-04-01 23:04

‘바람의 아들’ 갑작스런 은퇴
호랑이는 풀을 먹지 않는다 “그게 이종범이니까”
개막 전 2군행 통보에
“스스로 앞길을 택했다”

“선동열 감독 부임때
미리 언질 줬으면…”
은퇴 아쉬움 곱씹어

“내 야구인생은 70점
아들 90점 만들겠다”

아들이 재차 물었다. “왜 그러셨어요?” 아빠는 답했다. “네가 마흔셋이 되면 알게 될 거야.” 평소 무뚝뚝하던 아들이 울었다. 엄마가 “왜 우느냐”고 했다. “그냥, 그냥 슬퍼서 눈물이 자꾸 나요.” 자신과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도 조용히 눈물을 삼켰다. ‘바람의 아들’이 글러브와 방망이를 놓기로 한 3월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이종범(KIA)에게 갑작스런 은퇴의 이유를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그게 이종범이니까.” 그는 이날 선동열 감독, 이순철 수석코치와 면담을 했다. 코칭스태프는 개막 엔트리 제외를 통보하면서 플레잉코치를 제안했다. 시즌 중에도 1군 엔트리 진입이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함께 전했다. 새롭게 출범한 ‘선동열 체제’에서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구단이나 코칭스태프는 미래를 위해 젊은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고자 했다.

이종범은 1일 새벽 <한겨레>와의 전화통화에서 “2군에서도 뛸 수 있었겠지만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스스로 은퇴를 결정했다”며 “그게 정말 나다운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감독님이 처음 부임했을 때 미리 언질이라도 줬으면 이렇게 급히 은퇴하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아쉬움도 곱씹었다. 이종범은 20번째 스프링캠프를 풀로 소화하면서 착실하게 2012 시즌을 준비해왔다. 방망이를 짧게 잡고 수천수만 번 스윙 연습을 했다. 하지만 개막 1주일 전 전격적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기로 하면서 노력은 물거품이 됐다.

1993년 건국대를 졸업하고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데뷔한 이종범은 그해 득점 1위(85득점), 도루 2위(73개), 안타 2위(133개), 홈런 4위(16개)에 올랐지만 신인왕 투표에서는 타격왕 양준혁(삼성·은퇴)에게 밀렸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맹활약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최우수선수(MVP)가 됐다. 이듬해에는 타율(0.393), 최다안타(196개), 도루(84개), 출루율(0.452), 득점(113개) 등 타격 5관왕에 오르며 정규리그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공격과 수비·주루에서 완벽한 모습으로 ‘야구 천재’, ‘바람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구단의 어려운 재정 상황 등의 이유로 1997년 말 일본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로 이적했다가 2001년 기아로 옷을 갈아입은 친정팀에 복귀했다. 2009년 타이거즈의 10번째 우승을 도운 뒤 은퇴 권유를 받았지만 현역에 남았다. 한국프로야구 16시즌 성적은 통산 타율 0.297, 1100득점, 1797안타, 510도루, 194홈런을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은 4차례 경험했고, 골든글러브도 6차례 수상했다. ‘해태 왕조’의 마지막 전성기를 이끈 이가 바로 그였다.

이종범은 “이제 야구선수 아버지로 돌아간다”며 “정후에게 ‘열심히 해서 내가 이룬 모든 기록을 다 깨라’고 했다. 내 야구 인생은 70점 정도인데 정후는 열심히 훈련시켜서 꼭 90점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아들 정후군은 현재 광주 소재 중학교 야구선수로 활약중이다. 딸 가현양은 음악 전공으로 서울 소재 예술중학교에 다닌다. 이종범은 “은퇴 선언 이후 구단은 호의적이었고 좋은 제안도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길은 가지 않겠다. 나 스스로 콘크리트 8차선 도로를 만들겠다. ‘이종범’이니까”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이어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팬들을 초대해 조촐한 은퇴식도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한편 만우절에 이종범의 거짓말 같은 은퇴 소식을 접한 프로야구계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이승엽(삼성)은 “이종범 선배는 최고의 야구선수였다. 그가 은퇴했다는 게 아직까지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고, 김병현(넥센)은 “팬으로서, 후배로서 이렇게 은퇴하게 돼 아쉽다”고 했다. 2006년 세계야구클래식(WBC)을 함께 뛴 박진만(SK)은 “선수로서, 사람으로서 많은 것을 배운 선배였다. 내 마음속 최고의 선수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선동열 감독은 “성급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구단과 상의해서 은퇴 경기 날짜를 잡았다면 멋있게 은퇴할 수 있었을 텐데 그 기회를 차버린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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