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선수 나이 서른일곱. ‘은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불쑥불쑥 떠오를 때다. 에스케이(SK) 베테랑 타자 이호준(사진)도 그랬다. 지난겨울 미국 전지훈련 명단에서도 빠졌고, 시즌 초에는 2군에 있었다. 그가 설 자리는 더이상 없는 것처럼 보였다. “1군 경기에 못 나가니까 ‘정말 은퇴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도 마지막 기회를 위해서 지금껏 하기 싫었던 것을 하면서 준비를 착실하게 했죠.”
그는 준비기간 동안 달리기와 웨이트트레이닝을 열심히 했다. 젊은 시절에는 있는 힘도 주체하지 못하는 그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꾸준한 체력훈련 덕인지 고질적인 무릎 통증이 거의 없어졌고, 하체 밸런스 또한 잡혔다. 타석에서의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기꺼이 삼진을 당할 요량으로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풀스윙을 가져갔다. “홍성흔, 박용택 등을 보면 헛스윙이 많은데도 시즌 끝날 때 보면 타율이 3할 언저리에 있었다. 그들을 벤치마킹해서 타석에서 3구 안에 승부를 가져간 게 오히려 도움이 되고 있다.”
이호준은 올해 전체 타수의 32%(350타수 중 161타수)를 1~2구에 끝냈다. 3일 현재 성적은 타율 0.303, 18홈런 67타점. 2007년(0.313) 이후 5년 만에 3할 타율을 노리고 있다. 홈런은 2005년(21개) 이후 가장 많다. 규정 타석을 채운 팀 내 유일한 3할 타자이기도 하다. 8월에는 무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타율 0.324, 5홈런 20타점을 올렸다. 그의 활약 덕에 에스케이는 8월 가장 높은 승률(0.682·15승7패)을 기록할 수 있었다. 이만수 에스케이 감독은 “타자 중에서 이호준이 가장 고맙다. 시즌 초반 포기할 수도 있었는데 스스로 이만큼 올라왔고, 중심타선에서 제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고 칭찬한다.
잔여 시즌 목표는 확실하다. “2007년 말 에프에이(FA) 계약을 하고 그동안 한 게 전혀 없는데 이대로 은퇴하면 안 된다 싶었다. 명예회복을 위해 원래 타율 2할8푼대-20홈런-70타점을 목표로 했고, 현재까지는 잘해온 것 같다. 타점은 가능할 것 같은데 홈런 2개가 문제다. 유일한 팀 내 3할 타자라서 3할 타율도 꼭 유지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쉬는 날이면 아이들 학교로 마중을 나가는 다정한 아빠이기도 한 이호준. 그의 ‘미친 존재감’이 에스케이의 6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꿈을 한층 무르익게 하고 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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