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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경엽 “야구도 축구처럼 상대팀 많이 괴롭혀야 이겨요”

등록 2014-11-25 21:04수정 2014-11-26 09:26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25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방망이를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염경엽 넥센 히어로즈 감독이 25일 서울 양천구 목동야구장에서 방망이를 들어 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축구기자가 만난 넥센 염경엽 감독
“어차피 골 넣는 선수는 정해져 있잖아요. 그 선수가 공을 잡기 전에 막으면 될 것 같은데.(웃음)”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염경엽(46) 감독한테 “만약 축구 감독을 한다면 어떤 작전을 쓰겠느냐”라는 질문을 던지자 나온 첫 대답이다. 염 감독은 곧바로 “핵심 공격수를 꽁꽁 묶겠다”고 했다. 그럴듯하다. “그런데 호날두는 왜 못 막을까요?” “그러니까 공이 전달되지 못하도록 미리 막아야죠, 하하.”

25일 서울 목동야구장에서 만난 염 감독은 축구 얘기도 잘 받아넘겼다. 프로 통산 타율 1할(0.195)대의 철저한 무명에서, 야구단 운영팀 대리로, 다시 작전코치를 거쳐 감독에 오른 범상치 않은 전력에서 다져진 내공이다. “최고의 디펜스는 원인부터 막아야 한다. 야구에서도 삼성의 최형우나 이승엽을 막으려 하면 안 된다. 그 선수 앞에 주자를 내보내지 않아야 한다.”

98년 부친상 뒤 처음으로 눈물
감독 첫해 4강, 올해는 준우승
내년 선수운용계획 바로 짰어요”

게임 전날 미리 1~9회 그려봐
하위 타순이면 작전 자주 걸어
올시즌 70%는 생각한대로 돼

피곤한 팀으로 불리고 싶어
발 느려도 도루 주문 ‘투수 압박’
박병호도 강정호도 서건창도
기술보다 ‘네 가치 높여라’ 말해

축구 감독은 하프타임 외에는 선수들에게 직접 주문을 넣기 어렵다. 작전타임도 없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다. “답답하면 선수한테 직접 소리치고 싶지 않으냐”고 묻자 “야구는 시그널(신호)의 경기다. 정 필요하면 마운드에 두 번 올라가는데 시그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데뷔 첫해 4강, 둘째 해인 올해 한국시리즈 진출로 돌풍을 몰고 온 그는 “게임 전부터 경기는 시작된다. 하루 전날 미리 1~9회 상황을 영사기처럼 가상해 돌려본다”고 했다. 점쟁이처럼 투수 교체나 대타 등의 디테일까지 그려본다. 그게 맞으면 대박이지만, 안 맞아도 예상한 그림이 있어 대처하기 편하다.

축구에서는 감독이 교체 투입할 선수를 후반 몇분 식으로 미리 정해두고 들어간다. 염 감독은 어떨까? “야구도 마찬가지다. 대타는 이닝별로 구체적으로 정해놓는다. 만약 박병호 타순이라면 어렵겠지만, 하위 타순이면 작전을 건다.” 넥센의 경기를 보면 자주 작전이 나온다. 지난 10월27일 플레이오프 1차 엘지전. 염 감독은 1-3으로 뒤지던 6회말 2-3으로 따라붙자, 박헌도 타석에 서동욱을 대타로 내보내 번트를 성공시키고 주자 2·3루를 만든다. 이어 박동원 대신 등장한 대타 윤석민은 3점 아치로 경기를 뒤엎었다.

야구를 잘 몰라도 아기자기한 작전이 성공하면 야구가 재미있어진다. 염 감독은 “계산해보지 않았지만 올 시즌 대략 70%가 생각한 대로 됐다”고 평가했다. 넥센 팬들은 염 감독을 제갈량에 빗대 ‘염갈량’, 혹은 통역 출신의 첼시 감독 조제 모리뉴에 빗대 ‘염리뉴’라 부른다. 물론 끝까지 쓰지 못한 히든카드는 늘 나온다.

현대 축구는 스피드와 압박이 핵심이다. 염 감독은 “야구도 똑같다. 상대가 편하지 않게 자꾸만 괴롭혀야 한다. 그게 압박이고, 생각의 속도”라고 했다. 발이 느린 주자가 나가도 2루 도루를 시키는 이유는 상대 투수를 불편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편하게 던지는 투수와 10%라도 주자를 신경쓰는 투수는 천양지차다. 실수를 많이 유발할수록 승리 확률이 커진다. 넥센은 까다로운 팀, 피곤한 팀으로 불리고 싶다.”

축구에서 공격수는 실수를 해도 단 한번의 득점 기회를 연결하면 영웅이 되고, 수비수는 단 한번 실수로 역적이 된다. 야구는 어떨까? 염 감독은 “축구도 1~2명의 득점자가 강하다고 강팀이 아니듯이 야구도 똑같다. 비록 홈런 타자가 경기의 흐름을 바꾸기는 하지만 혼자서 하는 게 아니다. 주전 9명이 하는 것도 아니고 1군과 2군을 오가며 받쳐주는 모든 선수들이 해낸 것”이라고 했다.

영국에서는 축구 감독을 매니저라고 부른다. 경영 마인드와 선수단 관리 등의 측면을 중시한다. 코칭스태프 20명과 1, 2군 선수 80여명을 다루는 염 감독도 매니저다. 선수마다 맞춤한 처방을 내리는 것은 물론 기본이다. 염 감독은 “강정호는 매년 겪었던 한달여 슬럼프가 올 시즌엔 없었다. 그게 홈런 10개로 추가돼 40개를 기록한 원동력”이라고 했다. 염 감독은 강정호한테는 더 이상 기술적인 코칭이 의미가 없다고 봤다. 그보다는 “너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슬럼프를 없애라”는 주문을 냈고, 강정호는 감독의 과제를 풀면서 차원이 다른 선수가 됐다. 박병호는 도루까지 해내며 20(홈런)-20(도루) 클럽에 들었다. 서건창은 201안타 신기록을 작성하면서 선수 가치를 높였다.

배경에는 주입식 교육에 대한 염 감독의 반감이 있다. 염 감독은 “한국의 교육이나 스포츠는 위에서 스케줄 주고 하라는 대로 한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한테 스토리가 없다. 인터뷰를 해도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에 대한 구구절절한 사연이 없으니 짧게 끝난다. 선수들이 ‘왜 야구를 하는지’ 생각하게 만들고 자기의 야구를 하도록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 고독한 싸움을 지탱한 힘은 가냘픈 체구에 숨겨진 ‘독기’에서 나온다. 염 감독은 “선수 출신으로 현대 야구단의 직원으로 취직한 것이 첫 사례여서 내가 잘해야 후배들한테 길이 열린다고 생각했고, 넥센 감독이 됐을 때도 내가 실패하면 다른 코치들한테도 기회를 빼앗게 되는 것 같아서 더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한국시리즈 6차전 패배로 준우승에 그쳤을 때 염경엽 감독은 1998년 아버지가 돌아갔을 때 이후 처음으로 크게 울었다. 선수들한테는 싫은 소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내년 시즌 구상에 들어갔다. 그는 “시즌 뒤 회복기간에 내년 선수 운용 계획의 대강을 짠다. 스프링 캠프 때는 선수들마다 자기 역할에 맡는 임무를 준다. 포지션을 경쟁시키기보다는 각자의 목표를 주고 추구하라는 제로 플러스의 주문을 낸다”고 했다. 그 결과 선수단의 분위기는 매우 밝다. 염 감독은 “1996년 프로 주전에서 후보로 바뀌는 순간 순탄한 길만 걸어왔던 내 야구의 제2의 인생이 시작됐고, 그때부터 흐트러질 때마다 ‘처음처럼’을 수도 없이 외쳤다”고 했다. “축구는 좋아하지만 야구와 함께 둘 다를 열광적으로 좋아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염 감독은 18년 만에 결실을 맺었고, 내일도 야구 개척자의 길을 준비하고 있다.

김창금 기자 kimck@hani.co.kr·사진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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