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야구장에서 넥센 서건창 선수가 팬인 이한주씨와 이우인 군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스포츠 신년기획 별을 보다] ① 서건창
야구복을 입은 우인이는 한껏 들떠 있었다. “화장실 거울을 보며 질문 연습도 했다”며 자랑했다. 막상 서건창(26·넥센 히어로즈)과 마주서자 우인이는 그만 얼어붙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오”라는 말만 반복했다. 옆에 있던 삼촌이 어깨를 툭 쳤지만 그대로였다. 서건창은 그런 우인이를 보면서 지긋이 웃었다.
지난달 22일 서울 양천구 목동구장. 개인훈련을 막 끝낸 서건창과 히어로즈 골수팬인 이한주(43·자영업)씨, 그리고 리틀야구 선수인 그의 조카 이우인(10·김포 신곡초 4)군이 만났다. 이씨는 히어로즈 전신인 현대 유니콘스 시절부터 팬이었다. 프로야구 사상 첫 200안타 돌파(201개)의 신화를 쓴 서건창과 어른·꼬마팬의 만남은 <한겨레> 주선으로 이뤄졌다.
“진짜 장그래(<미생> 주인공) 닮았는데요.” 대화는 ‘외모’로부터 시작됐다. 만남 직전 “여러 시상식 중계 때 서건창 선수를 보면 피부가 너무 고와서 진짜 그런지 궁금했다”던 이씨였다. 피부 얘기에 쑥쓰러워 하던 서건창은 ‘장그래 닮은꼴’ 언급에 “절대 안 닮았다. 그분(탤런트 임시완)에게 민폐다”라며 선을 그었다. ‘미생’에서 ‘완생’이 된 소감을 묻는 질문에도 고개를 저었다. “아직 멀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더 밑에서부터 시작해야할 것 같아요. 더 큰 목표를 위해 가는 것도 있고, 만족한다는 부분이 끝날 때까지 없을 것도 같아요.”
이한주씨(이하 이씨) 정규리그 막판에 200안타를 2개 남겨놓고 9회에 볼넷을 걸러 출루하는 모습을 봤어요. 투수도 1.5군 급이어서 볼카운트 3-1에서 휘두를 줄 알았는데 안타 욕심을 버리고 볼을 골라서 출루하는 것을 보고 멘탈이 참 강하다고 느꼈죠. ‘1번 타자로 출루가 우선이다, 팀이 우선이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야구 철학 같은 건가요?
서건창 ‘팀이 우선’이라는 것은 프로 선수들이 가져야 할 당연한 마음이예요. 욕심 부리면 안된다는 것을 느껴도 봤고. 경기 흐름에 맞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201안타도) 의식을 안 해서, 흐름에 맞게 하다 보니 나온 것 같아요.
이씨 득점이나 3루타 신기록 세우면서 굉장히 허슬 플레이를 했잖아요. 전 경기 출장도 했고요.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읽어보니 잦은 부상 때문에 어려움도 겪었다고 하는데 허슬 플레이를 하면서 부상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서건창 부상은 오히려 망설일 때 나온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오히려 더 과감하게 하려는 부분이 있죠. 부상이 두려워서 못하면 야구를 아예 하지 말아야죠. 야구뿐만 아니라 대개 모든 일이 위험 부담을 안고 있잖아요. 확률상 부상에 맞서는 게 오히려 나아요.
이씨 홈에서 포수와 접전을 벌이는 것을 보면 금방이라도 다칠 것 같아서 팬으로써 조마조마해요.
서건창 과감하게는 하지만 무모하게 하지는 않아요. 많이 해봤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 같은 경우에는 순간순간 피하면서 하죠. 안전한 상황에서는 최대한 과감하게 하려 해요.
우인이는 계속 서건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질문 없어?”라고 재촉하니 당황하다가 다시 “오”라는 감탄사만 반복했다. 그런 우인이를 서건창은 따뜻한 시선으로 한동안 바라봤다.
서건창 어릴 적 생각이 많이 나네요.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는데 경기에 지면 분해서 어린 마음에 울기도 했거든요. 그 순간에는 최고의 경기였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도 걱정없이 스트레스 안 받고 야구 하던 때였어요, 그때가.
이씨 야구 선수가 되고팠던 이유가 있나요.
서건창 ‘광주’ 하면 야구의 도시잖아요. 야구를 너무 좋아했어요. ‘해태 타이거즈’라는 강한 팀이 있어서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다른 스포츠를 접해볼 경험이 많이 없어서 친구들과 놀아도 캐치볼 하면서 놀고 그랬어요. 집에서도 테니스 공 갖고 야구놀이 하다가 유리 깨뜨리기도 했고. 그게 생활이었어요.
이씨 강정호 선수가 광주일고 2년 선배죠? 팀에서 굉장히 도움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요.
서건창 신고선수로 들어와서 넥센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할 때 도움을 많이 주셨죠. 학교 선배니 든든하기도 했고. 주전 되고 게임 같이 하면서도 유격수(강정호)-2루수(서건창) 호흡이 잘 맞았아요.
이씨 강정호 선수가 메이저리그로 가서 새로운 유격수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내년 수비 부담은 없나요?
서건창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 자체가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죠. 정호형의 빈자리가 있기는 한데 스프링캠프 때 다른 선수와 맞춰볼 충분한 시간이 있고 팀에 좋은 선수들이 많아서 괜찮아요. 정호형이 쉴 때 김하성, 김지수 형이랑 하기도 했었고. 일단 제가 실수를 하지 않고 잘해야죠.
잠시 인터뷰가 끊겼을 때 서건창에게 스트레스 해소법을 물었다. “야구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는 야구로 푼다. 좋은 성적 내면 확 풀린다”는 답이 돌아왔다. 최다 안타 신기록을 세우고 신인왕을 받고 2년 만에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로 뽑힌 지금, 서건창이 가장 원하는 목표는 여전히 “경기에 최대한 많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신고선수 시절 때의 1군에 대한 갈망 때문일까. 서건창은 “그 시절에 야구장에 다시 꼭 오고 싶다는 간절함이 생긴 것은 맞지만 야구 선수의 본분은 야구 경기에 많이 나가는 것”이라고 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엘지에서 방출 뒤 겪은 2년 간의 군 복무 얘기로 흘러갔다.
이씨 4년 전의 일반 사병이 지금 프로야구 최고 선수가 된 거잖아요. 일반 사병으로 있다가 바로 야구가 되나요? 감각이라는 게 있는데.
서건창 제대하고 두 달 만에 넥센 입단 테스트를 봤는데 두 달 동안 하니까 감각이 돌아오긴 하더라고요. 당장 코앞에 닥친 일이라서 할 수밖에 없었고.
이씨 본인이 독기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나요.
서건창 그런 마음이 없지는 않죠.
이씨 만약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됐다면 지금의 서건창이 있었을까요.
서건창 처음부터 잘 풀렸어도 열심히 했었을 것 같기는 해요. 그런데 시련을 겪었기 때문에 조금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싶네요.
이씨 우투좌타인데 원래 오른손잡이예요? 왼손잡이예요?
서건창 원래 오른손잡이인데 왼손으로 타격 연습했고 중학교 때까지는 스위치 타자였어요.(서건창이 아마추어일 때는 왼손타자가 프로에서 유리하다는 판단 하에 감독들이 오른손잡이 선수들에게 왼손 타격을 많이 시켰다.) 경기 전 타격 연습 때 오른손으로 쳐보기도 하는데 생각보다 공도 잘 맞추고 타구도 멀리 나가요. 타격 말고는 글씨도 오른손으로 쓰고 밥도 오른손으로 먹어요.
이씨 왼손으로 할 줄 아는 게 딱 하나(타격)인데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하는 거네요?
서건창 하하하.
이씨 결혼 생각은 없으세요?
서건창 일단 아직은….
이씨 주변에 서건창 선수를 보면서 희망을 품는 젊은 친구들이 많아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서건창 (당황하면서) 저도 아직 젊은데…. 해보니까 힘든 시간은 지나가더라고요. 그 당시에는 막연하게 꿈만 꾸고 그랬는데 시간이 해결해 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힘들 때라도)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노력은 다한 것 같아요. 여러 방법도 찾아보고 기술적 부분이 안되면 이미지 트레이닝도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항상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100% 가지고는 안 돼요. 100%를 가지고도 막상 기회가 왔을 때는 분명히 100%를 발휘하지 못하거든요. 실제로는 절반도 못 하는 경우가 허다하죠. 100% 이상 준비를 해 놓아야만 그나마 100%에 근접할 수 있어요. 당장 내일이 기회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미리 준비했으면 해요.
이한주 씨는 서건창의 마지막 말을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앞으로 무엇이 될 지, 무엇을 할 지 몰라 불안해하는 주변의 젊은 친구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이 막막하고 불안한 시간은 뜻없이 기다리는 시간이 아니라 그들 인생의 200안타를 준비하는 시간일 거라고, 서건창이 바로 그 증거라고 얘기해주겠다”고 했다.
인터뷰 뒤 우인이는 서건창과 캐치볼을 주고받고 수비 연습도 잠깐 했다. “땅볼을 참 잘 잡는다”는 서건창의 칭찬에 우인이는 더욱 신이 나서 공을 낚아챘다. 서건창과 헤어진 뒤 우인이는 드디어 말문이 터졌다. “이거 진짜 꿈이 아닌거죠?” 서건창은 2014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어린 시절 봤던 이종범 선배님과 같은 감동을 만들어가겠다”는 소감을 말했었다. 그는 이미 이 시대의 ‘이종범’이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22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야구장에서 넥센 서건창 선수가 팬인 이우인 군과 캐피볼을 하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gud555@hani.co.kr
넥센 히어로즈의 서건창 선수.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