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현지시각)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선수들이 ‘재키 로빈슨의 날’을 맞아 그의 등번호 42번을 달고 줄 서 있다. 첫 흑인 메이저리거 재키 로빈슨은 선수 시절 살해 위협을 받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팀 동료였던 진 허맨스키가 “우리 모두 42번을 달고 경기에 나서볼까”라는 말로 그를 위로했다. 이 발언을 계기로 매년 4월15일엔 로빈슨을 기리기 위해 모든 메이저리거들이 등번호 42번을 단다. 로스앤젤레스/AFP 연합뉴스
인종의 벽 허문 재키 로빈슨 기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4월15일(현지시각)엔 선수들을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이날은 메이저리그에서 인종의 벽을 허문 재키 로빈슨(1919~1972)을 기리고자 모든 선수들이 예외없이 등번호 42번을 단다. 류현진(엘에이 다저스)은 물론 추신수(텍사스 레인저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리츠) 등도 경기에 출장하진 못했지만 42번을 달았다.
재키 로빈슨은 1945년 엘에이 다저스의 전신인 브루클린 다저스에 입단했다. 흑인 선수들에 대한 인종차별이 여전한 때였다. 다저스 단장 브랜치 리키는 로빈슨에게 “인종적 모욕을 참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부당한 대접도 감수하겠다”는 약속을 한 뒤에야 계약을 할 수 있었다. 로빈슨은 2년여 동안 마이너리그에서 경험을 쌓은 뒤 마침내 1947년 4월15일 2만여명의 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메이저리그 데뷔 경기를 치렀다. 백인이 아닌 선수가 최초로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순간이었다.
그는 관중은 물론 일부 동료에게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으나 이를 극복하고 첫해 내셔널리그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1949년에는 내셔널리그 최우수선수·타격왕에 올랐고, 이후 팀이 월드시리즈에 6회나 진출하는 데 큰 공헌을 했다. 로빈슨은 1956년 은퇴했으며 1962년에는 흑인 최초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그는 인종차별에 적극적으로 저항했다. 군복무 중 인종차별에 저항해 군법회의에 회부되기도 했으며 은퇴 뒤에는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목사 등과 함께 흑인 인권운동에도 적극적이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데뷔 50돌이었던 1997년 그의 등번호 42번을 모든 팀에서 영구 결번으로 정했으며 2004년부터 4월15일을 ‘재키 로빈슨의 날’로 지정해 오늘에 이르렀다.
엘에이 다저스는 이날 로빈슨의 부인 레이철을 초청한 자리에서 올해 안에 홈구장인 다저스타디움에 재키 로빈슨의 동상을 건립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다저스타디움은 1962년 개장했지만 그동안 동상을 세운 적은 없다.
이찬영 기자 lcy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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