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14년만의 우승 비결
엄지발가락(양의지)을 다쳤고, 왼손 검지를 여섯 바늘 꿰매는 열상(정수빈)을 입었으며 종아리 근육통(오재원)까지 왔다. 타구에 맞은 왼발등(허경민)도 부어올랐다. 포스트시즌 14경기, 48시간 넘게 뛰면서 온갖 부상에 신음했으나 두산 베어스 선수들은 주저앉지 않았다. 정규리그(144경기)부터 마지막 한국시리즈 5차전(10월31일)까지 올해 그들이 뛴 경기 수는 158경기. ‘미러클’ 두산은 기어이 통합 5연패를 노리던 삼성 라이온즈를 꺾고 2015 케이비오(KBO)리그 최후의 승자가 됐다. ‘허슬 두’ 열풍을 일으킨 2001년 이후 14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 정규리그 1위가 아닌 팀(3위)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것도 2001년 이후 처음이다. 당시 두산도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해 1위 삼성을 꺾었다.
■ 초보 사령탑의 뚝심 두산은 2001년 이후 4차례(2005, 2007, 2008, 2013년) 준우승만 했다. 2007년에는 1~2차전을 이기고도 에스케이(SK)에 우승을 내줬고, 2013년에는 3승(1패)을 선점하고도 대역전패를 당했다. ‘2등 두산’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이유다. 2011년 6월 김경문 감독이 중도 사퇴한 뒤에는 김광수(감독대행)-김진욱-송일수-김태형으로 사령탑도 여러번 바뀌었다. 우승을 갈망하는 팀의 초보 사령탑 선임은 우려를 낳기도 했으나 선수(포수) 때부터 두산 ‘디엔에이’(DNA)로 무장한 김태형 감독은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한국시리즈 때는 강공법을 펼치면서도 점수가 필요할 때는 희생번트 등의 작전야구로 악착같이 점수를 뽑아냈다. 과감한 결단력으로 한 템포 빠른 투수 교체를 강행하면서 삼성을 압박한 게 돋보였다.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같은 팀에서 선수, 감독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본 김태형 감독은 “선수 때 우승했을 때보다 감독으로 우승한 게 더 기쁜 것 같다”고 소감을 남겼다. 그는 이어 “더그아웃에서 선수들 스스로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하는 게 보였다. 윤명준과 노경은의 마무리 기용이 실패하고, (6월에) 이현승을 마무리로 돌려서 성공한 게 한국시리즈 우승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했다.
■ 강력한 원투펀치 두산에 5년째 몸담고 있는 더스틴 니퍼트는 어깨 부상 등으로 정규시즌 때 6승5패 평균자책 5.10의 실망스러운 성적을 남겼다. 하지만 가장 큰 무대에서 ‘니느님’으로 돌아오며 외국인 선수 최고 몸값(150만달러·17억원)에 걸맞은 활약을 했다. 포스트시즌 4경기 선발 등판에서 3승 무패의 막강한 어깨를 뽐냈고, 5차전(31일)에서는 7회 구원투수로 등판해 2⅓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포스트시즌 무실점 기록을 26⅔이닝으로 늘렸다. 평균자책은 0.56. 84억원의 투수 최고 몸값(FA)으로 롯데에서 두산으로 이적한 장원준 또한 3승 무패 평균자책 2.36으로 빼어난 활약을 보였다. 니퍼트와 장원준의 호투는 마무리 이현승 외에 믿을 만한 불펜이 없던 두산 마운드에 숨통을 틔워줬고 이들은 두산의 투자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 미친 1~3번 타자들 1~3번 타순에 배치된 정수빈과 허경민, 그리고 민병헌이 훨훨 날았다. 정수빈은 한국시리즈 1차전 때 불의의 손가락 부상을 당하기는 했으나 5차전 7회말 우월 3점 홈런을 쳐내는 등 14타수 8안타(0.571)로 삼성 마운드를 농락했다.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에 뽑힌 정수빈은 “(4차례) 준우승의 한을 오늘 푼 것 같다. 삼성처럼 4연패를 하고 싶다”고 밝혔다. 풀타임 주전으로 처음 가을야구를 소화한 허경민도, “병살타만 없으면 좋겠다”던 민병헌도 각각 9안타를 때려냈다. 허경민과 정수빈, 민병헌이 한국시리즈 1~5차전 동안 합작해낸 안타 수는 26개(경기당 5.2개)에 이르렀다.
한편 2015 포스트시즌 전체 수입금은 76억9269만600원으로 집계됐다. 운영비(약 40%)를 제외한 나머지가 팀별로 배분되는데 두산은 18억원 정도를 배당금으로 받을 것으로 보인다. 14년 만의 우승이니만큼 모그룹에서 풀 선수단 보너스도 만만찮을 듯하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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