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형 두산 감독이 지난 4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2001년 우승 사인볼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두산은 2001년 이후 14년 만에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곰의 탈을 쓴 여우 ‘곰탈여우’ 별칭
스트레스 받으면 생각 않고 먹는 체질
포스트시즌 중에 몸무게 3~4kg 늘어
최초로 같은 팀에서 선수·감독 우승
스트레스 받으면 생각 않고 먹는 체질
포스트시즌 중에 몸무게 3~4kg 늘어
최초로 같은 팀에서 선수·감독 우승
부쩍 살이 올랐다. 스스로도 부정하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는 체질인데 준플레이오프 직전부터 점심, (경기 뒤) 저녁을 두 끼 분량씩 먹은 것 같다. 포스트시즌 기간 동안 3~4㎏ 쪘고, 시즌 전체로 보면 84㎏에서 91㎏으로 늘었다. 유희관이 9월 이후에 6㎏ 쪘다는데 나와 비슷한 성격 같아서 뭐라고 말도 못했다.” 양복바지까지 안 맞아 새로 장만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오른 엄지발가락에 통풍까지 왔다. 그래도 괜찮다. 프로 사령탑 부임 첫해에 친정인 두산 베어스에 2001년 이후 14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안겼으니까. 김태형(48) 감독 얘기다. 최근 <한겨레>와 만난 김 감독은 “우승만 할 수 있으면 열 발가락에 다 통풍이 걸려도 괜찮다”며 웃었다.
돌아보면 “참 힘든 한 해”, “운도 꽤 좋은 한 해”였다. 외국인선수 3명 중에 제대로 해준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유네스키 마야와 잭 루츠를 시즌 중에 돌려보냈고, 포스트시즌에서 맹활약한 더스틴 니퍼트도 시즌 중에는 6승(5패)밖에 못 거뒀다. 김태형 감독은 “외국인선수 활약이 없는 상태에서 6~7위를 하고 있었으면 갑갑했을 것이다. 하지만 팀 성적이 상위권에 있었고, 그런 와중에 허경민, 허준혁, 이현호가 성장했다”고 돌아봤다. 만약 외국인선수 교체 카드(2번)를 다 쓰지 않았다면 니퍼트를 교체했을까. 김 감독은 단호하게 “마야나 루츠가 제 역할을 했으면 니퍼트를 무조건 바꿨을 것”이라고 말했다.
겉보기에 무던해 보이지만 사실 김 감독은 까칠하다. ‘곰탈 여우’(곰의 탈을 쓴 여우)로 불리는 이유다. 수석(유지훤), 타격(박철우), 투수(한용덕) 코치들이 감독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잡음이 들리지 않은 것도 그의 카리스마 때문이다. “경기 때나 훈련 때 아니다 싶은 게 있으면 코치들에게 강하게 간다. 까칠한 성격에 가끔 독설까지도 한다. 작전 수행 등에서 선수들이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생각하면 참지 않고 코치들에게 바로 솔직하게 얘기하는 편이다. 마음속에 묻어두면 서로에게 좋지 않다.”
김 감독은 선수 때도 그랬다. 외국인선수들이나 후배들의 기강을 단단히 잡았다. 타이론 우즈도 그 앞에서는 꼼짝 못했다. 감독 부임 후 경기 때도 확신이 들면 가차 없이 투수나 야수를 교체했다. “모든 책임은 감독이 진다”는 지론 아래 빠른 결단력을 선보였다. “경기 때는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초보 지도자로 배우는 과정이다. 한국시리즈 우승 때 담담했던 것도 이 때문인 것 같다.” 그런 그가 울었던 적이 있을까. “2000년 한국시리즈 7차전 때 현대한테 지고 화장실에서 정말 서럽게 울었다. 주장이었고 정말 이기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그때 외에는 없다.”
포수 출신 김 감독은 1990년 데뷔 이후 12시즌을 뛰는 동안 풀타임을 소화한 것이 두 시즌 정도뿐이다. 습관적 탈구 때문에 어깨가 한번 빠지면 한달 이상 쉬어야 했다. 트레이너 몰래 주사를 맞고 경기에 출전한 적도 있다. 통산 타율 0.235, 9홈런 157타점. 포수로 받아본 공 중에 최고는 박철순의 속구였다. “속구에도 각이 있었다”고 한다.
김 감독은 리그 사상 최초로 동일 팀에서 선수, 감독으로 우승을 맛봤다. 그가 생각하는 두산 ‘디엔에이’(DNA)는 무엇일까. “두산 디엔에이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 감독은 포기해야 하는 경기도 있다. 물론 선수는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 ‘허슬 두’라고도 표현하지만 결국에는 이기는 야구다. 두산의 약한 불펜을 생각하면 1~2점 지키는 야구가 아닌 공격력으로 승부를 걸어야만 했다. 만약 중간 계투진이 좋았다면 공격적인 야구가 아닌 다른 경기 운영 방법이 나왔을 수도 있다.” 그는 승부욕이 꽤 강한 편이다. 어떤 것을 시작하면 악착같이 파고들어 기어코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당구도, 골프도, 경기에 대한 통찰력도 그렇게 늘었다. 선수들에게도 늘 “자신 있는 ‘척’하지 말고 진짜 자신 있게 하라”고 주문한다.
김태형 감독은 마무리 훈련 지도를 위해 15일 일본 미야자키로 떠났다. 초보 감독이 아닌 우승 감독으로 첫 여정이다. “1년 전에는 첫 훈련 지도여서 진짜 설레고 떨렸다. 지금은 우승하고 행복하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선수단 운영이 걱정된다. 자유계약선수 김현수 문제도 있고, 외국인선수 계약도 있다. 일단 선수들 기대치를 낮추고 대체 선수를 준비시켜야 한다. 올해 성적을 지우고 전력이나 선수의 능력치를 마이너스로 잡고 출발해야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 내년에도 두산 베어스다운 야구로 승부를 걸겠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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