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야구·MLB

등번호의 저주

등록 2015-12-09 20:55

아하! 스포츠
“후배들이 왜 47번을 다는지 모르겠다. 47번은 저주받은 번호다.”

쌍둥이(트윈스) 둥지로 돌아온 ‘야생마’ 이상훈(44)의 말이다. 왜일까.

이상훈이 언급한 ‘47번의 저주’는 엘지 전신인 엠비시(MBC) 청룡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청룡에서 47번을 처음 단 선수는 고려대 출신의 외야수 김정수였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우승 주역이기도 했던 그는 83년 데뷔 때부터 47번을 달았는데 85년 투수로 전향한 뒤 그해 겨울 불의의 교통사고로 절명했다. 이후 47번은 김성준(90년), 김진명(91년·이상 단기간 방출)을 거쳐 93년 입단한 이상훈에게 넘어갔다. 긴 머리를 휘날리며 화려한 성적을 남긴 이상훈이 일본, 미국에서 뛰던 4년 동안(1998~2001년) 엘지 47번은 결번으로 남아 있었다. 엘지 복귀 뒤 이상훈은 계속 47번을 달았으나 2004년 스프링캠프 때 이순철 당시 신임 감독과 심각한 불화를 겪으며 에스케이(SK) 와이번스로 트레이드됐고 그해 6월 전격 은퇴했다.

‘47번 이상훈’이 워낙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인지 이후 ‘트윈스 47번’은 성적이 신통치 않거나 다치는 등의 불운을 겪었다. 봉중근이 복귀 첫해(2007년) 47번을 달았을 때 성적이 좋지 않아 팬들의 원성을 샀고, 기대주였던 ‘눈물의 왕자’ 이형종(2009년 47번)은 팔꿈치 통증과 감독과의 불화로 2010년 임의 탈퇴됐다. 좌완 파이어볼러였던 서승화 또한 구설에 오르면서 47번을 달았던 해(2011년)에 방출됐고 포수 조윤준(2012~2015년)은 작년 무릎 부상을 당했다. 엘지의 피칭 아카데미 초대 원장을 맡으면서 다시 47번을 달게 된 이상훈은 “(47번이) 저주받은 번호인 만큼 내가 다는 게 낫다. 내가 달면 저주가 없어지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프로야구에서 선수들이 꺼리는 등번호는 그리 많지 않다. 죽을 ‘사’(死) 자가 연상되는 4번이나 19금 이미지를 떠올리는 69번 등을 피할 뿐이다. 두산은 86년 투신자살(추정)한 고 김영신의 등번호 5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메이저리그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신시내티 레즈 포수였던 윌러드 허시버거가 팀 패배에 자책하다가 자살해 한동안 5번이 결번이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1.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2.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3.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4.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5.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