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스’라는 사회인 야구 동호회가 있다. 알음알음 아는 사람들끼리 모이다 보니 직업도 다양하다. 지난 연말부터 랩스는 십시일반 기금을 모으고 있다. 자신들이 뛰는 사회인 야구 리그에 매해 운동장을 빌려주는 배명고 야구부 선수 한 명을 후원하기 위해서다. 배명중 야구부 감독과 상의한 끝에 올해 고교 1학년이 되는 유망주를 도와주기로 정하고 ‘고교 3년 내내 후원’을 목표로 세웠다. 랩스 감독을 맡고 있는 홍운표씨는 “야구로 얻는 즐거움을 야구에 돌려주기 위해서”라고 취지를 설명했다.
최근 랩스 후원 모금 통장에는 ‘최지만’이라는 이름으로 돈이 입금됐다. 2009년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해 미국프로야구에 진출한 최지만은 지난해 말 룰 파이브 드래프트로 엘에이(LA)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으면서 올해 메이저리그 데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최지만의 후원금이 단순히 예비 메이저리거의 선행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최지만과 랩스의 인연은 그의 고교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최지만이 인천 동산고에 재학할 때 랩스는 유망주인 그에게 1년여간 월 30만원씩 후원했다. 지원을 받았던 선수가 빅 리그 입성을 앞두고 아마추어 후배에게 후원금을 쾌척했으니 이만한 감격이 또 없다. 홍 감독은 “통장을 보는 순간 진짜 뭉클했다”고 밝혔다.
최지만의 선행은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농아인들로 구성된 충주성심학교 야구부 이야기를 다룬 영화 <글러브>의 실제 주인공인 서길원을 2년여간 남몰래 후원해왔다. 서길원은 국내에서는 야구선수의 꿈을 이어갈 수 없어서 농아인 야구팀이 있는 미국 갤러뎃대학에 진학한 상태다. 최지만은 “나 역시 사정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야구) 후배 서길원이 자신의 꿈을 좇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한화를 제외한 프로야구 9개 구단의 연봉 협상이 끝났다. 지난해 최초로 평균 연봉(1억359만원·신인선수 포함) 1억원을 돌파한 프로야구는 올해도 자유계약선수(FA) 및 예비 에프에이의 영향으로 평균 연봉이 크게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의 경우 등록선수(외국인 선수 제외) 597명 중 140명(23.45%)이 억대 연봉을 받았고 3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자도 58명이나 됐다. 이들 중 일부 선수가 아마추어 후원금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금도 야구회비가 없어 그만두는 아마추어 선수들이 꽤 있다.
‘아너 소사이어티’(1억원 이상 기부한 사람들의 모임) 가입자인 류중일 삼성 감독의 선친은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너는 중·고등학교, 대학교 모두 등록금을 안 내고 공부했다. 받기만 했던 사람은 줄 줄은 모르는데 네가 야구를 잘해서 혹시나 큰돈을 만질 기회가 있으면 주변을 살펴보고 꼭 나눠라.” ‘야구’로 돈을 벌지 않는 사회인 야구 동호회도 “야구가 좋아서” 아마추어 선수를 돕는다. 후원을 받은 선수(아직 메이저리거도 아닌)는 또 다른 야구 후배를 위해 돈을 내놓는다. 돌고 도는 선한 마음. 지금의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에 기대되는 모습이다. 프로 선수의 ‘1인 1후원’ 같은 캠페인은 정녕 어려운 것일까.
김양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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